법적 가족 아닌 사랑은 남남인가요…가는 길 쓸쓸한 1인 가구


동거인·지인 법적 연고자 못 돼…'공영장례특별법' 제정 운동도

무연고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장례기업 해피엔딩의 관계자가 1월27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장례 후 정리를 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김미루 인턴기자] "새삼스럽게 혼인신고는 무슨…."

2년 전 초여름,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조촐한 장례식이 열렸다. 90대 할머니 A씨의 마지막 가는 길이었다. 남편은 있었지만 법적인 부부가 아니었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A씨는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정성으로 돌봐주던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고 혼자는 아니었다. 남편의 아들은 아버지 대신 새어머니를 돌봤다. A씨는 아들의 보살핌을 받다 2020년 6월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자치구는 A씨의 법적 연고자를 찾았지만 시신 인수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류상 '남남'인 아들은 장례를 치러줄 수 없었다. 결국 A씨의 장례는 '무연고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상주를 맡은 아들은 "어머니가 건강할 적에 엑스트라 알바도 시켜줬다"며 둘만의 소소한 추억을 떠올렸다.

'연고 있는 무연고자' A씨의 사례는 특별하지 않다. 서울시와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서울시설공단, 장례서비스 기업 해피엔딩과 함께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 856명의 장례를 치렀다.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장례도 더러 있지만, 고인이 생전 알고 지냈던 지인과 혈연, 법적 관계가 아닌 가족들이 찾아와 마지막길을 배웅한다.

'엄마 사랑하고. 행복한 아들이었어요. 그립습니다. 엄마 다시 만나요.'

'할머니 우리 천국에서 보자. 기다려요. 그동안 나 키워줘서 너무 고마워요. 사랑해.'

'형님 이제 아프지 마시고 편안히 가서 고스톱 치고 편히 지내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치러지는 승화원 내 그리다 공간 옆에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추모공간이 마련돼있다. /김세정 기자

법은 이들을 남남으로 떼어놓는다. 현행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 2조16항에 따르면 사망 시 고인의 연고자 권리는 배우자와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자매 순으로 갖는다. 조카나 이모, 삼촌 등 방계혈족은 연고자가 될 수 없다. 사망 전 고인을 치료·보호·관리했던 기관과 시신·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도 연고자가 될 수 있지만 법이 정한 범위의 혈연 순서대로 시신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가족개념 변화를 반영해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었다. 사실혼 관계나 장기간 유대를 이어온 이들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행정지침일 뿐 구속력이 없다.

복지부의 지침 내용을 구체적으로 아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도 드물다. 우선순위인 배우자나 자녀 등에게 등기로 부고 소식을 알리고 시신 인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그다음 순위엔 묻지 않고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연고자 돼도 장례비용에 사망진단서까지 '머나먼 길'

친족에게 시신위임각서를 받아 합법적 연고자 신분이 돼도 만만치 않은 장례 비용이 걸림돌이다. 지자체에서 친족에게 시신위임각서를 받는 기간은 14일. 행정 절차까지 거치면 평균 한 달 정도가 걸린다. 3개월까지 장례 결정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시신 안치료는 하루에 통상 10만원이 넘는다. 300만원에 이르는 한달 기준 안치료에 장례비용까지 합하면 금액은 더 불어난다. 평균 장례비용은 1400만원 안팎이다. 비용은 모두 한번에 내야 한다. 무연고 사망자의 지인들이 장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용을 마련하고, 위임 절차를 거쳐도 사망진단서가 속을 썩인다. 2020년 봄, 나눔과 나눔의 지원으로 장례를 치른 B씨가 그랬다. B씨의 동생은 조카들을 대신해 병원비를 내주고 형을 돌봤다. B씨의 사망 이후 동생은 조카들에게 위임을 받았지만 병원은 사망진단서 발급을 거부했다. 장사법상 동생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 범위에 들어가지만 의료법은 직계존비속이 없는 상황에서만 형제에게 사망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현행 장사법에 따르면 사망 시 고인의 연고자 권리는 배우자와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 순으로 가진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임세준 기자

2000년 15.5%에 그쳤던 1인가구는 2020년 31.7%를 돌파했다. 무연고 사망 비율도 점차 늘어난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 추정치는 총 3159명이었다. 2017년 2008명에서 5년 만에 57.3%나 증가했지만, 혈족 중심의 법체계에서 1인가구는 여전히 원하는 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재산 등 아주 좁은 범위를 제외하고는 죽음 이후를 준비할 법적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더팩트>가 만난 50대 중반의 여성 1인가구 현미(가명) 씨는 죽음을 준비할 수 없는 현실이 가끔 두렵다. 지난 여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법적 보호자가 없는 불안감을 알았다. 언니와 조카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부탁은 해놨지만 '언니가 나보다 먼저 떠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보니 죽음이라는 건 아무도 몰라요. 차근차근 준비하고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갑작스레 찾아올 수도 있어요. 교통사고가 나서 정신이 없는데 보호자가 아무도 없는 거예요. 혹시 내가 죽으면 이제 조카들도 성인이고, 바쁠 거 아녜요. 적금처럼 어디다 돈을 내면 나중에 내 장례 치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것도 안 된다는 거잖아요?"

법무부는 1인가구 증가에 따른 법제도 개선을 위해 '사공일가(사회적 공존을 위한 1인 가구)' TF를 출범시키고, 다인가구 중심의 법을 개정했다. 부양의무를 위반한 피상속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일명 '구하라법'과 유류분 권리자에서 형제자매를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혈연에 근거한 재산분배보다 고인의 의사를 더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했다. 여전히 재산문제에 머물렀다는 한계도 있다. 관계부처가 여럿인 탓이다.

◆'사실혼 배우자·유대관계 맺은 자'에 연고자 권리를

전문가들은 장사법의 연고자 조항에 '사실혼 관계 배우자' 또는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은 자'를 신설하는 등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21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참여한 홍유진 화우공익재단 변호사는 "법에 '시신을 관리하는 자'라고만 돼있다. 시신이 된 이후에만 연고자를 신청할 수 있어서 (장례까지) 기간이 길어진다. 사실혼 관계나 친구, 사회적 유대 관계자가 연고자에 처음부터 들어간다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 변호사는 "이들은 연고자가 돼도 장례를 대신 치러줄 뿐 상속은 전혀 받지 않는다. (장사법 외에) 사망진단서를 떼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의료법 개정도 필요하다"며 "장사법은 장례를 보건위생상의 문제로만 바라보는데 죽음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공영장례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15.5%에 불과하던 1인가구는 2020년 31.7%를 돌파했다. 무연고 사망 비율도 점차 늘어난다. /김세정 기자

지난 27일 승화원에서는 무연고 사망자 김모 씨와 채모 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가족이나 지인은 없었지만, 나눔과나눔, 해피엔딩 관계자들은 진심을 담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지막이 읊은 조사에는 뜨거운 울림이 있었다.

"2022년 문명사회를 사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살아가는 것도 걱정이지만, 이제는 죽음마저 걱정이 돼버린 우리네 삶을 바라봅니다. 평생을 외롭게 살다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외로운 죽음에 가슴 아픈 나를 보게 됩니다. 비록 얼굴 한 번 마주하면서 인사 한번 못했지만,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을 당신을 국화꽃 한 송이 없이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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