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우성 기자] 퇴사하면서 1년여 전 상급자의 성희롱 의혹을 폭로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4월 회사를 그만 두면서 본사 직원 등에게 단체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 인사팀장 B씨가 2014년 10월 술자리에서 손을 잡고 '오늘 같이 가자'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등 13차례 성희롱성 문자 메시지를 보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검찰이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형 약식명령을 청구하자 정식재판을 요구했다.
1,2심은 모두 A씨가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판사는 A씨가 본부에서 일반 매장으로 원하지 않는 인사발령을 한 B씨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냈다고 봤다. 문제의 술자리 당시 B씨는 성희롱 고충상담 업무를 하는 인사팀장이 아니었고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신고할 수 있었는데도 뒤늦게 문제를 삼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A씨가 퇴사하면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제기한 성희롱 진정이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판례에 따르면 명예훼손 사건에서 문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 직장 내 성희롱 의혹은 회사 구성원 전체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술자리에서 신체적 접촉이 있었고 B씨가 거듭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양측 주장이 엇갈리지만 입사 2년이 안 된 사원이 15년차 유부남 과장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술자리에는 A씨가 사내연애하던 상대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이메일에 B씨에게 인신공격적 표현을 쓰지 않았고 자신의 사례를 알려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기를 바란다는 동기를 밝힌 점도 참작했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 가해자 중심적인 인식과 구조 때문에 A씨가 성희롱 피해사례를 곧바로 알리기에는 2차피해 불안을 가질 수 있고 B씨가 이후 성희롱 문제를 담당하는 인사팀장을 맡았다"며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고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A씨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이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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