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문건은 적법·통신조회는 불법?…'내로남불' 사찰 논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연일 뜨겁다. 공수처는 적법한 수사 범위에서 통신자료 조회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후보는 불법사찰로 규정하고 공수처 폐지론을 꺼내들고 있다. /이선화 기자

법조계 "사찰로 보기 어려워…법 개정은 필요"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연일 뜨겁다. 공수처는 적법한 수사 범위에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후보는 '불법사찰'이라며 공수처 폐지론을 꺼내들고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기자들에 이어 민간인과 정치인 다수를 상대로도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기관이 전화번호 소유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일 등 가입자 정보를 수집하는 절차다. 법원 영장을 받아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통신사실 확인과는 다르다.

윤석열 캠프가 지난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수처는 윤 후보에 대해 총 3차례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 또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해서도 한 차례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윤 후보는 통신자료 조회를 사찰로 규정하면서 공수처를 향해 "미친사람들 아니냐"라며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적법한 절차라고 본다. 다만 합법이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조회하던 수사관행은 바꿔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윤 후보가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검찰이 282만여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점, 재판부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판사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을 두고 '적법한 정보수집 절차'라고 주장했던 윤 후보의 과거 입장 등에 비춰 '불법사찰'이라는 주장은 무리수라는 의견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를 할 때 다양하게 이뤄진다"며 "이걸 사찰로 보기는 어렵다는건 검사 출신이 많은 윤석열 캠프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의 입장도 비슷하다.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진욱 공수처장은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하냐"며 "윤 후보에 대해 공수처가 3회, 서울중앙지검 4회였고,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해선 공수처가 1회, 중앙지검이 5회였다"며 억울함을 내비쳤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사기관별 통신자료 조회 건수는 검찰이 59만7454건, 경찰 187만7582건이고 공수처는 135건이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에 재직한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까지 1년6개월간 검찰은 282만6천여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찰을 주장하던 윤 후보의 입장이 머쓱해졌다. 또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이 야당인 점을 고려하면 야당 의원에 대한 조회는 많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장 앞에서 열린 사찰의혹이 있는 공수처 해체 및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를 주장하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이선화 기자

또 윤 후보가 과거 재판부 분석 문건 의혹이 불거진 당시 판사들의 개인 신상정보 수집을 두고 '적법한 정보수집'이라고 주장한 것과 비교하면 사찰에 대한 윤 후보의 시각이 '제 논에 물대기'라는 의견도 있다. 윤 후보의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윤 후보 측 주장과 달리 '위법한 정보수집'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총장 시절 불거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수정관실)의 사찰 의혹에는 침묵하면서 통신자료 조회로 공수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재직 중 사찰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는 윤석열 후보는 사찰 운운에 앞서 본인의 사찰 논란에 해명과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다. 수정관실은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의 신상정보를 수집한 문건을 작성했고, 징계사유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분별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수사기관 전반에 걸친 해묵은 문제다. 오래전부터 영장주의로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며 "이것이 사찰이 된다면 윤 후보의 총장 재직 시절 이뤄진 검찰의 요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법조계에서는 통신자료 조회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통신자료를 요구할 때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도록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가 문제라면 전기통신사업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며 "(오랜 관행은 침묵하다가) 지금에서야 문제삼는 것은 말 그대로 내로남불"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관용차 조사 논란을 보도했던 기자의 가족을 대상으로도 통신자료 조회를 했던 것은 공수처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수처는 수사상황이라서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기자들에 대해선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수신, 발신 내역까지 확인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2016년 5월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도 지난달 19일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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