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 거리 돌고돌아 4시간…장애인이 지하철 시위하는 이유

지난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움직여 봤다. 이날 만난 장애인들은 제약된 이동권에 다른 기본권도 침해받고 있다며 설움을 토로했다. /김미루 인턴 기자

전장연, 기재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 촉구

[더팩트ㅣ김미루 인턴 기자] "선거날 투표장이 2층에 있으면 가지도 못해요. 비밀투표 원칙은 우리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에요."

서울 혜화역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제약된 이동권에 다른 기본권도 침해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문제 제기를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그 장소에 오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팩트>는 지난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동행했다. 영하 8도 맹추위가 기승을 부린 하루였지만 전장연이 수년째 이동권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이날 오전 8시 혜화역 5-3 출구 앞. 전장연 활동가 약 30명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시간 동안 선전전을 벌였다.

1-1번에서 2-3번 플랫폼까지 길게 늘어서 이동권 보장을 촉구했지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한 시민은 출근이 늦을까 걱정하며 경찰에 "열차를 탈 수 없는 거냐" 묻기도 했다.

전장연은 익숙한 분위기인 듯 자리를 지켰다. 12월 6일부터 벌써 21일째 선전전이다. 장애인 활동가 이형숙 씨는 "대중교통 이용이 항상 어렵기만 한 우리의 사정을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포천에서 김포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려요. 비장애인은 시외버스 타면 40분 만에 도착하는 곳이에요. 휠체어 때문인데 특별교통수단의 노선과 수가 매우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포천에서 의정부로, 의정부에서 고양시 덕양주민센터로, 그곳에서 김포로 두 번을 환승해 돌아가야만 해요."

집 근처에 갈 때조차 장애인들은 '전쟁'이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점검이라도 하면 동선이 꼬여 일터에 지각하고 만다.

이날만 해도 오후 2시 광화문역 1-1번 플랫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정작 참석이 쉽지 않았다. 을지로4가역에서 출발한 유진우(27) 씨는 엘리베이터를 못 타서 간신히 도착한 경우다.

"오늘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못 탔어요. 역사에선 법정 점검 날짜라던데 그걸 꼭 오늘 해야 하나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랑 을지로4가역 5호선 환승 엘리베이터가 전부 점검 중이래요."

송석호(30) 씨는 평소 이용하던 계단을 못 썼다. 2호기 리프트가 철거를 앞두면서다. 하지만 리프트 어느 곳에도 리프트를 대체하는 엘리베이터의 위치 안내 공지문은 붙어 있지 않았다. /김미루 인턴 기자

반대로 송석호(30) 씨는 평소 이용하던 계단을 못 썼다. 광화문역 계단 리프트 사용이 중단된 상태기 때문이다. 이에 역사 바깥으로 다시 나가 반대쪽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해서 내려와야 했다. 그는 "리프트 사용이 중단되면 같은 곳에 엘리베이터 위치라도 적어달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들은 '예산 없이 권리 없다'고 적힌 몸자보(몸에 입는 대자보)를 입었다. 기획재정부에 특별교통수단 예산 편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31일 교통약자편의증진법이 통과됐지만, 전장연 측은 "아직 달라진 건 없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콜택시, 저상버스 등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기재부 예산반영이 '의무' 조항이 아니라 '임의' 조항으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을 안 해도 법적으론 무방하다는 뜻이다.

전장연이 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비단 이동 편의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동권 제약에 다른 기본권도 침해받는 사례가 많아서다. 이형숙 활동가는 선거 때 비밀투표 원칙을 지키기 힘든 현실을 토로했다.

"투표소가 2층이면 힘들어요. 신원을 파악하는 데 쓰는 주민등록증도 다른 사람한테 전달했어요. 투표용지도 내가 직접 넣는 게 아니라 직원한테 줘야죠. 올해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다 있어서 걱정이에요."

그나마 서울은 나은 편이다. 세종시에서 온 장애인 활동가 문경희 씨는 이틀 전부터 교통편을 예약해야 했다. 비장애인은 세종시에서 종로구까지 즉각 택시를 잡아도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특별교통수단을 예약하고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교통수단도) 주말에는 아예 예약이 안 돼요. 정부에서는 이용자가 있는데도 없다면서 겨우 세 대만 운영하고 있어요. 서울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교통수단을 마련하기가 더 어럽죠."

이번 기자회견에서 전장연은 "장애인도 국민"이라며 "기재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예산에 의무 편성하라"고 촉구했다. 배재현 활동가는 "그나마 임의 편성이 명시된 것도 전장연이 혜화역에서 21일째 선전 활동을 이어나간 덕"이라며 "우리 요구가 현실화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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