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익 추구하는 측근들 문제"…"검찰, 유동규 통화 묻지도 않았는데 사실과 다른 보도"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소식을 접한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국민 혈세로 먹고 지낸 공직자로서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 사과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언급할 때는 "아직도 이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관천 전 경정. 2014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할 때 이른바 ‘십상시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다. 이 문서 유출 사건에 연루돼 약 500일 옥고를 치렀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며 비선실세의 존재를 처음 드러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 시민 정신을 계승한다며 출범한 현 정부도 어느덧 집권 마지막 해를 맞이했다. 박 전 경정은 그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또 새해 출범할 정부에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더팩트>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그가 활동하는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 마침 박 전 대통령이 출소한 지난달 31일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바쁘게 잘 지냈다. 현재는 시민단체 일을 돕고 있다. 어디서 불러주면 TV나 유튜브에 패널로도 나갔다. 주변에서 ‘좋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사실을 기록했다가 수사도 받고 고초가 있었지 않나. 이젠 팩트만 있으면 대통령이든 국무총리든 비평이 가능하니 편안해 보이나 보다.
-최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의 통화 사실이 알려졌다.
당황스러웠다. 제가 마치 연루된 의혹이 있다는 듯 사실과 전혀 다른 뉘앙스로 보도가 나갔다. 유동규 씨와 정확히 언제부터 몇 번 통화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저한테 법률 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어떻든 고향 선배의 부탁으로 유씨에게 법률자문을 해줬다. 언론 등의 명예훼손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가 십상시 문건 유출 등으로 수사받을 때 비슷한 피해를 본 적 있고, KBS의 ‘김학의 임명 배후 최순실’ 보도 때문에 벌인 소송에서도 이긴 적이 있다. 유씨가 그런 점들을 보고 저와 연락을 바랐다고 하더라. 유감인 것은, 경찰이든 검찰이든 제게 유씨와 통화한 이유 등을 묻거나 조사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도가 나가니 난감했다.
-보도가 어떤 경로로 왜 나간 것 같나.
제가 방송에 패널 등으로 출연해 검찰을 비판한 적이 몇 번 있는데 혹시 그 영향 때문일까 상상해본 적은 있다(웃음). 실은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사건에서도 비슷한 일로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먼저 서울동부지검에서 참고인으로 나오라고 했을 때였다. 기자들 눈에 안 띄는 게 좋겠다며 수사지원 차량을 내주더라. 그런데 제가 조사받은 사실이 나중에 검찰발로 보도됐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 나갔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때는 조사 마치고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한테 ‘오늘 조사받지 않았냐’는 전화를 받았다. 담당 검사한테 ‘말이 다르지 않냐’ 항의를 했더니, 그분도 이런저런 변명을 내놓으시는데 황당하더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사로 나왔다. 소회가 어떤가.
저는 박 전 대통령 얘기가 나오면 사죄부터 한다.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산 공무원이었으니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 용서를 구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3권 분립 구조에서 이뤄진 탄핵을 놓고 책(출간 예정인 옥중서한록)에 억울하다고 썼단다. 2016년 한겨울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영하 날씨 속에서 국정농단에 분노하며 촛불을 들었나. 박 전 대통령은 그런 국민에 진정한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사면 결정에 ‘문 대통령 결단에 사의를 표한다’고 했다던데 그 정도로는 안 된다. 각 의혹의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
-어떤 진실부터 밝혀야 할까.
뉴스를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책에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진다’고 썼다던데 저 역시 그 진실이 늘 궁금하다. 300여 명의 목숨이 서서히 수장되는 걸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 마음이 얼마나 찢겼나. 대통령은 그날 7시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7시간 미스터리’. 안 밝히는 건가, 못 밝히는 건가.
글쎄. 대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청와대는 초고도 보안시설이다. 일례로 청와대 내부에 CCTV가 엄청 많다. 사각지대가 없다. 심지어 대통령이 머무는 장소는 CCTV가 고정된 게 아니라 돌아간다. 대통령 동선에 따라 위해요소를 관찰하는 거다. 세월호 참사 당일 기록을 보면 대통령 7시간 진실의 실마리가 나오지 않겠나. 이번 정부에서도 할 수 있었던 작업이다. 그런데도 진실이 아직 안 밝혀졌으니 현 정부도 책임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남은 진실은 없나. ‘십상시 문건’도 소위 ‘톤다운’을 거쳐서 8차례 수정된 것으로 안다. 최초 문서엔 어떤 내용이 있었나.
문건의 정확한 명칭은 ‘VIP 최측근 비선실세(최순실·정윤회) 국정개입 동향’이었다. 최순실과 정윤회 등의 사람들이 밖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사리사욕을 챙기려는데, 이들을 조사할지 말지를 대통령에 묻기 위해 만든 보고서였다. 결과적으로는 국기문란 사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지만. 제가 검찰 조사 때 ‘우리나라 권력서열 순위 1위가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박근혜’라고 말했지 않나. 최초 문건에는 근거가 담겼다고 보면 된다. 또 최순실 등이 밖에서 누구한테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 등 혐의를 각각의 건별로 기록했다. 이를 뒷받침할 물적 증거가 있었다.
-비선실세의 존재를 최초에 알게 된 계기가 있었나.
청와대에서 VIP에 보고하는 절차가 기형적이었다. 보통은 행정관, 비서관, 수석, 실장을 거쳐 대통령 보고가 이뤄지는데 당시엔 비서관인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이 각 수석실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재만이 경제·금융·보건복지, 안봉근이 민정·홍보, 정호성이 정무 등 수석의 보고서를 취합해 ‘할매 재가’를 받는 거다. 참고로 ‘할매’는 박 전 대통령을 의미하는 청와대 내 은어였다. 아무튼 3인방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아보다가 최순실 존재를 파악했다. 그 이후에 십상시 문건을 만든 건데 혼도 좀 났다.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 뛰어와서는 '이 문건 어떤 XX가 만들었냐'며 다그치더라.
◆ "할매 뜻이다" 황당했던 '손봐줘야 할 인사 리스트'
-해당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도 됐었다. 스스로 '정치검찰'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제가 만나본 검사 대부분은 실체적 진실을 묵묵히 파헤치는 훌륭한 분들이었다. 정치검찰은 소수인데 그들이 낳는 폐해가 크다고 본다. 저보단 국민이 더 피해자다. 검찰이 문건 내용이 사실인지부터 철저히 수사했더라면 대통령 탄핵사태까지 가진 않았을 거다. 최순실 등을 수사하고 구속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문건 수사는 형사부 검사 1명이 맡았고, 유출 혐의는 특수부 1개 부서가 다 붙었다.
-소수의 정치검찰은 왜 생기는 건가.
권력에 잘 보이려는 윗선의 인사 욕심이 문제다. 사정기관에선 대통령 임기 4년 차부터 바짝 엎드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차기대선 유력 후보에 관한 첩보를 조용히 쌓아두는 때다. 그리고 당선자에게 가서 상대편 관련 보고를 한다. 그러면 당선자 측에선 좋아하지 않겠나. 물론 당선자 측근 관련 보고를 할 때도 있지만, 그러면 ‘왜 모함하냐’는 식의 반응이 뒤따라서 소용없다.
-정권이 먼저 정치보복 등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2013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일할 때였는데 아무 내용도 없이 7명의 이름만 적힌 문서가 내려오더라. 손 보라는 거다. 윗선에 ‘누구 뜻이냐’ 물어보니, ‘할매 뜻이다’라고 그러기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공직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를 혼내라는 지시도 있었다. 알아보니 큰 문제가 없는 곳이어서 거부했는데 ‘무능하다’는 등 뒷말이 많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무능하단 게 논란을 만드는 것보다 나았다. 특히 저는 청와대에서 잘리면 경찰로 복귀하면 되니까 부담이 덜했던 것도 사실이고.
-정치보복 악순환을 끊을 방법이 있을까.
제 경험에 비춰보면 대개의 문제는 측근에서 시작된다. 대통령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고, ‘저 사람은 내가 알아서 손봐줘야겠다’는 경우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게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다. 대통령이 스스로 세상에 귀 기울이는 수밖에.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때 경호실에 있었는데, 그분은 토요일이면 옛 친구 분들 뵈러 밖에 나가셨다. 더 솔직한 세상 이야기를 들었던 거다. 한 번 나가시면 친구분들과 9시 뉴스까지 챙겨보고 돌아오셨다. 앞 정부에선 그런 점들이 부족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측근들이 막았다. 100페이지가량 되는 보고서를 계속 올린다. 그런 식으로 사적이익이든 공적이든 저들이 원하는 방향을 유도한다.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서도 업무를 봤다고 했었지 않나. 서류 더미에 파묻혀서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을까.
◆ 가장 뛰어난 측근은 영부인…대선 보며 국격 우려
-곧 대선이다. 후보뿐 아니라 측근이 누구인지도 관심사일 것 같다.
물론이다. 다 아시더라도 실명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모 후보는 영부인 호칭을 없앤다며 ‘대통령 뽑는 거지, 영부인 뽑는 거 아니다’라고 말했다던데 어폐가 있다. 영부인의 역할과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측근 중 최측근이고 대통령에 유일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분이다. 대통령으로서도 진심으로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존재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할 때도 보라. 경호 인력이 대통령과 영부인에 따로 붙는다. 두 사람의 현지 일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즉 영부인만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나온다.
안타깝다. 또 다른 대목에서 걱정이 들더라. 다음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을 상상해 봤다. 전직 대통령 중 함께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는 세상을 떠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박 전 대통령도 특사 신분이지 않나. 수많은 외빈이 지켜볼 행사인데 국격이 우려된다.
-현재 여야 후보를 둘러싼 의혹들을 놓고 수사가 진행 중이다. 대장동 수사는 어떻게 보나.
사실 단순한 수사다. 돈의 흐름을 쫓으면 된다. 범죄 이유는 결국 이익 때문이니까. 대장동 범죄를 모의한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돈이 어떻게 모였고 분배됐는지 차분히 훑고 혐의를 주워 담아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검찰이 수사에 집중하도록 놔줘야 한다. 누구 게이트인지를 놓고 옥신각신인데 진실과 거리가 멀어질 뿐이다. 엄밀히 말해 대장동 비리는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게이트다. 개발 비리 세력이 한 정부만 걸쳐 작업하나. 차기 정부까지 염두에 두고 여기저기 줄을 대는 거다.
-고발사주 수사도 있다.
저는 그 문제는 네이밍이 잘못됐다고 본다. ‘고발사주’는 가벼워 보인다. 가령 한 검사가 친구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고소·고발해라’ 말하면 그것도 고발사주인 거다. ‘검찰의 정치개입 의혹’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수사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검찰 출신 혹은 현직 관계자를 상대로 한 수사인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민첩하고 기민한 모습을 못 보여줬다. 압수수색 타이밍도 너무 늦었고, 절차 등을 두고도 논란이 계속 나온다. 물론 이 대목에서도 정치권과 언론에 아쉽다. 사안의 진실에 집중하기보다 제보자가 어떤 사람이냐, 박지원 국정원장과 밥을 먹었느냐는 등 부수적인 데에 치중한다. 제가 수사를 받을 때 문건의 진실을 따지기보다 유출에 집중했던 것처럼. 만약 국정원장 등이 얽히는 등 다른 문제가 있다면 공수처는 각 사안을 분리해서 수사해야 한다. 지금은 한 덩어리로 묶어서 진행하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인상이다.
-새해 목표나 소망은 있나.
아마 모든 사람과 같지 않을까 싶다. 마스크부터 벗었으면 좋겠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인 탓에 드라마도 많이 못 봤는데, 이제는 TV 보며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