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입법 손 놓은 국회, 성장 지켜봐야…국민신뢰 우선"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이후 첫 새해를 맞이했다.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이라는 국민적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있지만 신생 조직으로서 국회의 지원과 함께 성장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월21일 현판식을 열고 공식 업무에 들어간 공수처는 출범 보름 만에 100건의 사건을 접수받는 등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이성윤 서울고검장 '에스코트' 조사에 이어 검찰과의 '조건부 이첩' 갈등, '1호 사건' 적정성 논란, 손준성 검사 구속영장 기각, 통신자료 조회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수사역량 부족, 문어발식 수사 등 공수처 스스로 문제점도 있었지만, 출범 이후 정치권이 공수처의 구조적 한계를 신경쓰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가 출범 2개월 만에 맞은 첫 리스크는 관용차 조사 논란이었다. 관용차량으로 이성윤 고검장을 호송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 위기에 처했다. 대체로 이 시기부터 조건부 이첩 논란과 검사 정원 미달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집중포화를 받게 됐다는 분석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혜 채용 의혹을 '1호 사건'으로 선택하면서 출범을 적극 지지했던 여권의 비판까지 받게 됐다.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피의자로 연이어 입건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노렸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수사력을 보였다. 공수처는 옵티머스 사건 부실수사 의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으로 윤 후보를 지난해 6월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대선을 9개월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유력 대선후보를 입건할 정도면 결정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이어 고발사주와 판사사찰 의혹으로도 윤 후보를 입건하자 국민의힘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으며 공세 수위를 높여나갔다.
고발사주 수사는 공수처에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대검찰청 감찰에 이어 중앙지검도 고소장을 접수받고 수사에 나섰지만, 공수처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윤 후보와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입건하고 강제 수사에 나섰다. 고발사주 수사를 여론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지만, 오히려 수사역량 부족 문제가 그대로 드러냈다. 손 검사의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고, 김웅 의원 압수수색은 절차 미비로 취소당했다. 언론인과 민간인, 정치인을 상대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공수처 폐지를 압박하면서 공세에 고삐를 죄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에 대한 평가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출범에만 공을 들였지, 이후 입법적 보완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의 큰 원인은 국회에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출범 이후)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평가는 이르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선 공수처에 우리가 무엇을 해줬는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며 "출범 이후 정치권은 사실상 방임상태로 둔 것으로 보인다. 지금 공수처법과 사무규칙밖에 없는 상황인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공수처답게 활동할 수 있는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필성 변호사(법무법인 가로수)는 "공수처는 극한의 정치적 대립 끝에 출범했다. 국회도 일단 통과는 시켜놓고 나중에 보완하자는 생각으로 법을 통과시켰다"며 "입법적 보완이 많이 필요한 상태에서 만들어졌는데 이후 검찰개혁 동력이 떨어지면서 잘 안 된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립 속에 서 있고,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정치적인 의미가 과대하게 부여되는 상황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나 경찰은 경험이 있지만, 공수처는 정치권의 공격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존폐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결국은 정치적 이유 때문인데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어쨌든 필요한 기구니까 기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전반적 정책이나 방향, 후속입법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수처가 스스로 비판을 자초했다며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범 첫해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헌법재판소의 경우 시행착오를 겪고, 자중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공수처는 그러지 않았다"며 "준비 기간을 갖지도 않고 역량보다 너무 많은 사건을 맡아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국민들에게 실망을 줬다. 사건이 대부분 정치적 논쟁의 성격을 띠는데 그런 사건은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공수처의 주된 기능은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범죄나 비리를 처단하는 것인데 검찰개혁과 얽히면서 사실상 검찰을 수사하는 기관이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협조를 전혀 못받는 상황이 됐다"며 "국민적 신뢰가 생명력인데 신뢰가 무너졌다. 제도개선보다는 신뢰를 되찾는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 위원은 "공수처의 예산이나 인력증원만으로는 질적 향상은 되지 않는다"며 "독립된 기관으로 고위공직자 범죄를 엄정히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은 공수처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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