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혐의로…"제대로 수사해달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서…업무처리에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달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두봉 인천지검장은 여당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그날 오전, 대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유우성 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 공소기각을 확정했다. 사법부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례였다.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 씨는 201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년 뒤 국정원의 증거 조작이 드러나면서 유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정원 직원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검사들이 징계 처분을 받자 검찰은 돌연 유 씨를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기소했다. 이미 4년 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던 사건을 다시 꺼낸 것이다. 이두봉 인천지검장은 당시 중앙지검 형사2부장으로 사건을 지휘했다. 과거 유 씨를 변호했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정감사 자리에서 만난 이 지검장은 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24일 오후, 유우성 씨는 변호인들과 함께 정부과천청사를 찾아 이 지검장을 비롯해 당시 중앙지검장, 1차장검사 등 지휘부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했다. 유 씨는 취재진에게 "여러 차례 검찰에 고발했지만, 담당 검사들은 결국 처벌받지도 않고 조사도 받지 않았다"며 "공소권 남용 대법원 판결을 갖고 공수처에 다시 한번 고소한다. 부디 공수처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해달라"고 말했다.
유 씨의 변호인은 "업무처리에 유의한다"는 이 지검장의 발언은 '유체이탈'이라고 비판했다. 김진형 변호사는 "이 지검장이 부장검사로 결재했던 분이다. '업무에 참조한다'는 말은 대법원이 확정한 '공소권 남용' 행위를 저지른 당사자가 할 발언은 아니다"라며 "그 발언만 보더라도 검찰이 스스로의 잘못을 개선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40여 일이 지났지만 유 씨는 검찰로부터 단 한 마디의 사과도 듣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국감에 출석한 김오수 검찰총장은 사과 요구를 받자 "판결문 등을 살펴보고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며 명쾌한 답을 피했다. 김 변호사는 "저희가 검찰에게 들은 것은 '업무에 참조하겠다'는 이두봉 검사장의 이야기밖에 없었다"며 "그게 전부였다. 검찰 조직이나 검찰 관계자가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유우성 씨 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발언이 떠오른다고 했다. 윤 후보는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 합류하면서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김진형 변호사는 "시민을 범죄자로 낙인찍기 위해서 검사들이 보복의 의도를 갖고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 대법원의 판결로 인정됐다"며 "단순히 유우성이라는 개인의 기본권 훼손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의 범죄행위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당 검사들과 지도부에 대해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sejungki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