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지나도 요양원 신세…국가 배상 요구
[더팩트ㅣ정용석 기자] "1980년 동생이랑 들뜬 마음으로 야구장에 갔어요. 매표소에 선 동생이 침을 한 번 뱉었거든요. 그 길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끌려간 동생을 2년이 지나서야 만났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저를 못 알아보더라고요. 기억을 잃었다며, 41년이 지난 지금도 요양병원에 누워만…"
박광수(71) 씨는 동생 이수(65) 씨의 피해를 증언하며 말을 맺지 못했다. 시종 붉은 눈시울로 발언을 이어 가다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할 때는 결국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흐느꼈다.
침을 뱉었다는 이유로 붙잡힌 이수 씨가 끌려간 장소는 ‘삼청교육대’,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폭력과 인권 유린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는 군인들로부터 4주 동안 순화교육을 받고 근로봉사로 1년을 보냈다. 이후 보호감호 처분에 따라 김천보호감호소에 2년 수용됐다.
3년 만에 사회에 나온 청년은 형을 알아보지 못했다. 삼청교육대에서 겪은 가혹행위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다. 41년이 지난 지금도 후유증 때문에 강원도 한 요양원에 누워만 있는 상태다.
16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적정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삼청교육대 변호단을 구성해 박 씨를 비롯한 삼청교육 피해자와 가족 22명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민변은 자리에 함께 한 박 씨 외에도 피해자가 수없이 많다고 강조했다. '머리가 길다', '손님과 직원의 다툼을 말렸다'는 등의 이유로 순화교육 피해를 당한 사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장악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불량배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그해 8월1일부터 12월29일까지 6만755명을 체포했다. 법원의 영장 발부 절차는 없었다.
이중 3252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4만여 명이 전국 각지의 군부대에서 4주의 순화교육을 받았다. 순화교육 과정에서 입소자들은 새벽부터 육체 훈련에 시달리고 구타를 당하는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 순화교육이 끝나고도 근로봉사와 보호감호로 피해를 받은 인원도 각각 1만여명, 7500여명이다.
민변은 "2004년 1월 제정된 삼청교육피해자법에 따라 상이·사망·행방불명 피해자들에 대해 보상이 이뤄졌으나 순화교육, 근로봉사, 보호감호로 인한 피해에는 보상이 이뤄지지 않거나 미약했다"며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적정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변은 보호감호 피해자 4명, 순화교육·근로봉사 피해자 6명을 원고로 1차 소송을 우선 제기하고 다른 피해자 10여 명의 2차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배상에는 금전 보상뿐만 아니라 진실 규명, 책임자에 대한 문책,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등도 함께 강조했다.
또 삼청교육대 운영에 근거가 된 '계엄포고 제13호'가 위법이라며 사회보호법 부칙 5조 위헌소송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민변은 오는 12월28일까지 또 다른 피해자와 가족의 추가 피해를 접수 받아 함께 소송을 제기하겠다고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