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계엄포고 위반 재심…전태삼 씨 "노동자에 희망을"
[더팩트ㅣ정용석 기자] "이번 재판이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돌아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71) 씨는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 재심의 증인이다. 그가 재판 준비에 몰입하는 이유는 꼭 모친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에 희망을 주는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다.
검찰은 지난 3~4월 이 여사를 포함해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5명의 재심을 청구했다. 이 여사는 1980년 계엄 당국의 허가 없이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41년 만에 청구한 재심으로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는 전 씨를 지난 24일 만났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언덕바지를 한참 올라야 닿을 수 있는 낙산 꼭대기로 기자를 부른 그는 "이곳이 우리 가족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창신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죠? 저기 남대문교회 앞 회현동 골목에서 우리 가족이 지냈어요. 아버지부터 형까지 모두 봉제 노동자였죠. 실은 이곳 창신동 곳곳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다 봉제공장이기도 했고요. 그 시절 모습이 이곳에선 얼마나 선명하게 그려지는지 몰라요."
한편으로는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전 열사 분신 이후 5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못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창신동 구석에 남아 있는 봉제공장을 볼 때 더욱 속 아프지만, 그럴 때면 형의 일기장을 읽는다.
"1970년대나 지금이나 노동환경은 크게 변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형님의 일기장을 보면 ‘절망은 없다’, ‘전후는 염려 없다’는 문구가 있거든요. 이런 '전태일 정신'과 오늘날이 만나는 자리가 어머니의 재심이라고 생각해요."
이 여사는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 나이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아들 전태일의 정신을 계속 이어갔다.
1980년 5월 4일 학생들의 초대로 고려대 시국 성토 대회에 참여해 지명수매를 당했지만, 바로 닷새 뒤 한국노총의 노동3권 촉구 농성에도 참여했다.
전씨는 이 여사가 서슬퍼런 신군부 시절 이렇게 앞장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재심에서 거듭 강조할 생각이다.
"어머니가 집회에 참여한 당위성과 경위 등을 설명할 자료를 준비 중이에요. 어머니는 계엄 포고령 1호로 검거돼 군사재판을 받았는데, 와중에도 '절망은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냈었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 씨의 '전태일 정신'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전두환심판국민행동’ 상임고문을 맡아 김명신 대표와 4년째 전두환 씨의 사죄를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 씨의 항소심 공판 때마다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형이 분신한 11월 13일을 기리며 매달 ‘13일의 지킴이’ 행사도 진행한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무지개떡을 나눈다. 그는 "형이 살아 생전 차비를 아껴서 배고픈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나눠줬다"며 "그 풀빵을 상징하는 것이 매달 나누고 있는 희망의 무지개떡"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달 9일 재심 1회 공판을 열었고 지난 14일 2회 공판에서 전 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증인신문은 11월 25일 오전 11시 10분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