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은닉교사 다툼 여지…미공개정보·위수증 공방 이어질 듯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법원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딸 조민 씨의 대학원 입학 취소가 결정되는 등 파장이 크다. 정 전 교수와 검찰 모두 상고했지만 일각에서는 '어차피 법률심이라 사실관계 판단이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오히려 법률심이기 때문에 일부 판단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분석한다.
◆현장 동행한 교사범?…법조계 "생소한 판시"
1·2심 판단이 각각 다른 증거은닉교사죄가 대표적이다. 현행법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했을 때'만 처벌한다. 자신이나 가족에 관한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면 범죄로 보지 않는다. 정 전 교수도 1심에서 이러한 논리로 증거은닉교사 혐의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자산관리인(PB) 김모 씨에게 동양대 사무실 컴퓨터를 숨기게 한 혐의다. 판결문에 드러난 당시 상황을 보면, 정 전 교수는 2019년 8월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 서재에 있는 컴퓨터 2대의 하드디스크들을 교체하라"며 PB 김씨에게 저장매체를 새로 사 교체하도록 했다.
같은 달 31일에는 떼어낸 저장매체를 숨겨놓으라고 지시하는 한편 김씨와 함께 동양대에 내려가 사무실 컴퓨터를 반출했다. 정 전 교수는 애초 하드디스크만 교체하려 했지만 건물 출입문이 닫힐 시간이 되자 컴퓨터를 아예 반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정 전 교수가 저장매체 교체를 위해 직접 선을 분리한 점 △교체할 저장매체 구매처를 알려준 점 △김 씨와 동양대로 함께 이동한 점 등에 비춰 정 전 교수가 직접 은닉 행위를 했다고 봤다.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은닉했기 때문에 범죄가 아니고, 김 씨에게 은닉을 교사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김 씨와 함께 동양대에 간 사실은 인정되지만 직접 은닉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2심 재판부는 정 전 교수가 미리 선을 분리하거나 동양대에 함께 이동한 행위 등을 놓고 "'은닉' 자체의 실행이라고 볼 수 없는 행위다. '은닉'을 위한 준비 행위로 평가돼야 한다"라고 정정했다.
법조계에서는 생경한 판시라는 말이 나온다. 함께 범행 현장에 가서 '출입문이 곧 닫히니 컴퓨터를 통째로 반출하라'고 지시하는 등 지휘까지 했는데도 교사범으로 판단한 건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교사범이 함께 현장에 간 사건 자체를 본 적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그동안 우리 법원이 공동정범 범위를 넓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 전 교수의 항소심 판결은 증거인멸 교사 판단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며 "정 전 교수 측은 상고심에서 2심 판단은 공동정범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한 법리오해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상고심에서 2심 판단이 뒤집힐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태근 변호사(법률사무소 신록)는 "증거인멸 행위 실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더라도 공모하거나 주도적 역할을 했다면 교사범이 아닌 공동정범으로 보는 게 기존 판례 경향"이라며 "1·2심 판단이 엇갈린 이상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대법원에서 다툴 만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대법에서 정 전 교수의 의사와 행위 가운데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판단이 뒤집힐 수 있다"며 "김 씨에게 자신의 증거를 은닉하도록 한 의사를 중심으로 본다면 2심과 마찬가지로 유죄 판단이 내려질 것이고, 반대로 자택에서 PC선을 미리 분리해놓고 은닉 현장까지 함께 가서 본체 반출을 지시하는 등 행위를 중심으로 본다면 공동정범으로 판단해 2심 판단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검찰, 'WFM 12만주 무죄' 뒤집을 수 있을까
검찰로서도 대법에 기대를 걸 대목이 있다.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자본시장법상 미공개중요정보이용죄다. 정 전 교수는 2018년 1월 오촌 시조카 조모 씨에게 호재성 정보를 듣고 2차 전지업체 WFM 주식 모두 12만주를 산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이 가운데 10만주를 유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무죄로 뒤집었다.
판단이 뒤집힌 건 주식거래 상대방을 당시 WFM 최대주주였던 우국환 씨가 아닌 오촌 조카 조 씨로 봤기 때문이다. 1심은 매도인을 우 씨로 봤다. 우 씨는 수사기관·법정 등에서 미공개중요정보로 지목된 군산공장 가동 정보를 몰랐다고 증언했다. 1심은 이를 근거로 매도인이 모르는 정보를 정 전 교수가 입수했다며 미공개중요정보이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반대로 2심은 정 전 교수에게 주식을 판 상대방은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 회사 실운영자인 조 씨가 공장가동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정 전 교수가 미공개중요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2심 각각 다른 매도인을 지목한 만큼 대법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2심처럼 매도인을 조 씨로 봐도 '실운영자와 법인은 동일체'라는 전제가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법학과 교수는 "실운영자와 코링크PE 법인은 각각 독립된 인격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다"며 "실운영자인 조 씨가 미공개정보를 알았다고 해서 매도인인 코링크PE가 알았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건 다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조국이 "대법서 다투겠다"던 위수증 승산 있나
선고 당일 배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대법에서 다투겠다"고 적은 증거수집 적법성도 괄목할 만하다. 정 전 교수 측은 동양대 강사휴게실 컴퓨터 전자정보는 위법수집증거(위수증)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외관상으로 임의제출 형식을 띠었을 뿐 영장 없이 강행한 수사였고, 제출자인 조교를 '보관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1·2심 모두 결과적으로 위수증이 아니라고 봤지만 세부적인 판단은 달랐다. 1심은 검찰의 컴퓨터 확보 과정을 "영장 없이 할 수 있는 임의수사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영장 없이 물건을 압수하는 경우 강제력이 행사되지 않을 뿐 일단 수사기관에 영치되면 제출자가 회복하지 못한다(돌려받지 못한다)는 점에 비춰 강제수사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원심이 임의수사라고 단정한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조교를 보관자로 본 판단 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위수증 주장은 배척됐다.
최근 대법 판결 추세를 봤을 때 '임의수사는 아니다'라는 판단에서 나아가 위수증을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최근 대법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상고심에서 '증인 사전면담'이라는 검찰 수사 관행을 지적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입시비리 관련 혐의 모두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이르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는 "대법 판결 추세를 봤을 때 검찰 증거 수집 절차를 지적하는 판례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입시비리 관련 다른 증거도 많아 위수증이 인정된다고 해서 바로 무죄 취지 파기환송으로 귀결된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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