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말리자 '어차피 입양가잖아'…2심도 중형 구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6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울고등법원 한 법정에 수의를 입은 앳된 얼굴의 남녀가 나란히 피고인석에 섰다. 항소심 첫 공판이지만 다툴 사안이 많지 않아 바로 결심이 진행됐다. 검사는 "원심 구형대로 선고해달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남성에게 무기징역, 여성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법정에 들어올 때 담담했던 남녀지만, 이내 그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생후 29일 아기를 구타해 결국 숨지게 한 남성 A(23) 씨와 친모 B(24) 씨의 항소심 첫 공판이자 결심공판에서의 일이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B 씨는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채 A 씨를 만나게 됐다. 이들은 아기를 낳으면 입양 보내기로 하고 A 씨의 직장에서 마련해준 원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얼마 뒤 아기를 낳았지만 입양은 쉽지 않았다. 아기의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입양기관은 심장 초음파검사를 완료해야 아기를 인계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A·B 씨는 양육을 시작했다. A 씨의 구타도 시작됐다.
2020년 12월 7일에 집에 온 아기는 같은 달 27일 사망했다. 그 사이 A 씨는 아기를 지속적으로 구타했다. 판결문에 적시된 날만 엿새다. 12월 26일 오전에는 아기의 이마에 멍이 들었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같은 날 저녁 또 구타했다. 범행 시각은 주로 저녁과 새벽에 집중됐다. 잠자는 시간에 운다고 때렸기 때문이다. 아기가 아파서 더 크게 울면 또 때렸다.
12월 27일 오후 2시 40분경부터 아기는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A 씨와 친모는 신생아가 숨을 헐떡이는데도 즉각 조처하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3시를 넘겨 아기가 숨을 쉬지 않자 그제야 119에 신고했다. 뇌사 상태에 빠진 아기는 하루 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태어난 지 29일째 되던 날이었다. 사인은 외상성 머리 부위 손상이었다.
1심 재판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살해된 피해자의 생명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A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원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도 항소장을 제출했다. 26일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이자 결심 공판에서 A 씨는 사람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했다며 뒤늦게 눈물을 흘렸다.
A 씨는 최후진술에서 "코로나로 (수용시설에서) 종교활동을 하지 못하지만 뒤늦게나마 아이의 명복을 빌고 있다. 제가 이렇게 빌어서 무엇이 바뀔까 싶지만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라며 "평생을 잊지 않고 속죄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친모는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를 양육·보호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 친모임에도 위험한 상태에 방치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친모는 그래도 A 씨의 폭행을 말렸다. 친모가 아기를 왜 그렇게 세게 때리냐고 할 때마다 A 씨는 '약하게 때렸다', '힘 조절이 안 된다'고 둘러댔다. 하루는 A 씨가 아기의 분유 먹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때리려 다가오자 친모는 아기를 안은 채 몸을 돌렸다. 폭행을 말리는 친모에게 A 씨는 '입양 보낼 건데 정 주지 말아라'고 말한 일도 있었다.
친모 측 변호인은 최종변론에서 불우한 성장환경, 경제적으로 A 씨에게 종속돼 있던 점을 참작해달라고 했다. 친모의 최후진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목이 멘 그는 어렵게 입을 뗐지만 A 씨 최후진술의 1/4도 채 안 되는 분량이었다. 친모는 가까스로 "아이를 지키지 못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제 행동을 반성하고 있다"고 말한 뒤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30일 오후 2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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