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되면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 후 내사
[더팩트ㅣ박나영 기자] 검찰이 수사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하면 각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내사에 착수한다. '여론몰이식'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없애기 위한 법무부 특단의 조처다. 권력 수사와 취재 위축 우려는 일축했다.
법무부는 1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 개정을 완료하고 즉시 시행했다. 2019년 12월 첫 시행 이후 1년8개월 만에 수사정보 유출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보다 강화됐다.
검찰이 전문 공보관을 거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수사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심이 들면 각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를 거쳐 내사에 착수하도록 하는 조항 신설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2019년 12월 첫 시행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전문 공보관을 두고,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된 피의사실과 수사상황만 언론에 공개하도록 했다. 그러나 올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청와대 기획 사정' 의혹 수사 내용이 상세히 보도되면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를 통해 검찰청 공무원의 범죄나 비위를 발견하면 소속 검찰청장에게 보고해야 하고, 검찰청장은 감찰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검찰 수사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합동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규정 개정안을 공개하고 '여론몰이식' 피의사실 유출 관행을 엄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정 초안에는 인권보호관이 수사나 감찰을 의뢰하도록 했으나 내사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내사는 수사 개시 이전 단계로, 범죄나 비위 유무 확인을 위한 조사를 말한다.
인권보호관의 내사 착수 근거 조항이 신설된 것을 두고 권력층을 겨냥한 수사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론의 관심이 높은 사건일수록 언론보도가 많은데, 수사팀의 피의사실 유출이 의심된다며 내사에 들어가면 권력형 비리에 대한 언론보도도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는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유출 의혹이 제기되면 먼저 진상을 조사한 뒤 범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내사에 착수하는 것으로 단계를 나눴다는 설명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규정 개정에 앞서 법원, 검찰, 공수처 등 여러 관계기관의 의견조회를 거쳤고, 특히 일선 검찰청의 의견을 받은 다음 대검과 여러 차례 의견 교환을 통해 의견을 합치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전제로 공개 범위를 확대했다는 입장이다. △수사의뢰 △고소·고발 △압수수색 △출국금지 △소환조사 △체포·구속 등 수사 단계별로 공개범위를 세분화해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
피의사실 공표의 '예외적 허용' 요건도 구체화됐다. 예외적 공개는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 정황'이 있어야 하고, 공개 범위는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근거로 해야 한다. 예외적 공개가 가능한 범죄 유형은 테러, 디지털성범죄, 감염병 관련범죄 등과 중요사건으로 특정했다.
오보대응은 사건 관계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하도록 했다. 범인의 실명 등을 공개할 때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추가했다. 공소제기 전 예외적으로 형사사건을 공개한 뒤 피의자가 반론을 요청하면 그 내용까지 공개하도록 했다.
다만 형사사건공개심의위 절차 일체가 비공개로 규정돼 비판이 제기된다. 법무부 측은 사건 진행 비공개가 대원칙이라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공인 수사 공개가 제한되는 등 언론 취재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법무부 관계자는 "큰 틀에서 우려할 필요가 크지 않다"며 "검찰의 관리감독이 소홀했거나 모호했던 규정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측은 "'여론몰이형' 수사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유죄 예단 방지를 통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개정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현장에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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