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손가락' 때문에 벌금형 경비원…2심은 무죄

상가 건물 문을 닫다가 손님 손가락을 끼게 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비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실의 모습으로 기사내용과 무관. /임세준 기자

"피해자 부주의일 뿐 과실 아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상가 문을 닫다가 손님 손가락을 다치게 한 경비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결과는 벌금형이었다. 출입문을 닫으며 피해자를 못 봤다는 이유만으로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3부(장윤선 부장판사)는 과실치상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은 70대 남성 A 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상가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던 A 씨는 2019년 12월 출입문을 닫던 중 손님인 B 씨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출입문 틈에 끼이게 해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하게 한 혐의(과실치상)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피해자가 문을 열고 나오려는 걸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과실이 아닌 피해자의 부주의에 따른 사고라는 설명이다.

반면 B 씨 측은 왼쪽 출입문을 열고 나오던 중 A 씨가 나타나 오른쪽 문을 닫는 바람에 손가락이 문 사이에 끼었다며 A 씨의 과실을 주장했다.

1심은 B 씨 측 주장을 받아들여 A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1심은 "피해자는 피해가 발생한 경위와 주변 상황, 피고인과 한 대화 내용 등을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이 진술과 기록상 드러난 사실관계 사이 모순되는 부분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피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점, 피해자의 법정 증언 태도 등에 비춰 볼 때 피해자에게 피고인을 무고할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 1심은 A 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과실을 일부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경찰 조사 당시 "저는 그 여자(피해자)를 보지 못하고 그냥 문을 닫은 것인데 그 여자가 다쳤다. 제 실수로 그런 것 같다"며 "그 여자가 문에 손이 끼어 아프다고 해 제가 어디 다쳤냐고 물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출입문 구조와 구체적인 상황의 선후 관계를 고려할 때 A 씨가 B 씨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건물 출입문은 상가 건물이나 빌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리 출입문 형태였다. 사람이 손잡이를 밀어 직접 문을 열 수 있는 구조다. A 씨는 B 씨가 걸어 나오는 방향을 등진 채 오른쪽 출입문을 닫고 있었는데, B 씨가 왼쪽 출입문을 밀어서 열고 나가려던 중 A 씨가 오른쪽 출입문을 닫으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 앞에서 오른쪽 출입문을 당겨 닫고 있었고, 피해자는 피고인의 뒤에서 다가와 왼쪽 출입문을 밀고 나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후방에서 출입문을 밀고 나가려는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발견했더라도 출입문을 닫는 행위를 멈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반면 피해자는 앞에서 출입문을 닫고 있는 피고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피고인에게 문 닫는 것을 잠시 멈춰달라고 말하거나, 피고인이 출입문을 다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는 등 조금만 주의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A 씨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출입문을 닫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출입문을 통과하는 걸 보지 못해 주의의무 위반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1심에서는 '과실 시인'이라고 봤던 A 씨의 수사기관 진술에 대한 판단도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과실의 법률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에 불과하다"며 "피고인이 자신의 과실을 자백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항소심 판결에 승복하면서 A 씨는 사건 발생 1년 6개월여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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