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 지급 시작한 장학금은 뇌물?…노환중 부산의료원장 변호인 '열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변호인은 지금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재판부께서 제지를 해주…." (고형곤 부장검사)
(자리에서 일어나며) "변호인의 시간입니다!" (노환중 부산의료원장 측 변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장학금 뇌물' 의혹의 중심에는 노환중 부산의료원장(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있다. 노 원장 측 '변호인의 시간'은 통상 검찰과 조 전 장관 부부 측 진술이 끝난 뒤, 해질녘이 돼 서야 주어진다. 재판이 오전부터 진행된 만큼 지칠 법도 하지만, 변호인은 전면 무죄를 강력히 항변하면서 "이건 공소사실이 아니라 공소꿈", "기소 논리가 참담한 수준"이라며 검찰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나의 오랜 꿈'을 위해 '예비 민정수석'에게 작업을?
노 원장은 부산대병원장이 되기 위해 2017년 2학기~2018년 2학기 딸 조민 씨의 장학금 명목으로 모두 6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 전 장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청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원장 측은 조 씨에게 처음으로 장학금을 지급한 시기가 '2016년 1학기'라고 강조한다. 박근혜 정부가 아직 건재한 시기 야권 성향 교수에게 뇌물을 줄 필요가 있었겠냐는 반문이다.
노 원장 측 변호인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 심리로 열린 9일 공판에서 프랑스의 의사 겸 예언가였던 노스트라다무스를 언급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조 전 장관의) 민정수석 행을 예감할 예지력이 있었다면 지금 법정에 있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장학금을 뇌물로 오해받아서 고초를 겪고 법정에 서는 것까지 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피고인이 예지력만 있는 바보냐. 검사의 기소 논리는 앞뒤가 안 맞아 참담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노 원장은 조 전 장관의 딸에게 왜 장학금을 줬을까. 조 씨는 당시 형편이 어려운 것도,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 씨에게 장학금을 준 이유로 노 원장은 '조 씨가 일명 관심병사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에 따르면 노 원장은 평소에도 유급한 학생과 면담을 해왔다. 대부분 성적은 저조해도 의전원생이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상태인데 조 씨는 달랐다고 한다.
변호인은 "99.9%의 학생이 의대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이 있고 의사로 사회에 진출하는 걸 당연하게 계획한다. 그러나 조 씨는 중도에 (의전원 공부를) 아예 포기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였다"며 "군대로 치면 관심병사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아예 의전원 공부를 포기할 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보여 '면학 장려' 차원에서 장학금을 수여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지난달 11일 공판에서 언급된 '장학금을 성적순으로 주면 안 된다'는 노 원장의 평소 생각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노 원장은 부친의 호를 따 설립한 '소천장학회'를 통해 조 씨에게 외부장학금을 지급했다. 유급당한 제자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성적 등 틀에 박힌 기준이 없는 외부장학금 형태로 독려금을 줬다는 설명이다.
◆조국 딸 장학금은 '비밀'?
의문은 남는다. 장학금을 받게 된 조 씨가 가족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제가 장학금을 받게 됐는데 (노 원장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조용히 타라고 하셨다'고 말한 대목이다. 어머니 정경심 교수는 '절대 모른 척해라'고 당부했다. 검찰은 이 대화를 근거로 노 원장과 조 씨 모두 장학금이 '특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장학금을 지급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호인은 "장학금이 비밀이라는 검찰 측 주장은 악의적 왜곡"이라며 "애초에 장학금 수여식은 제일 큰 강의실에서 열리고, 내외빈 30~40명까지 초대하는 큰 행사다. 장학금은 비밀리에 받는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노 원장 역시 "자랑하고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장학금 수여식에 100명이 넘게 참석하는데 비밀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직접 주장했다.
◆"검찰, 2017년 1학기 회의록 없다면 무능력의 극치"
9일 공판에서 노 원장 측이 꺼내든 무기는 2017년 1학기 부산대 의전원 장학위원회 회의록이다. 검찰이 주로 제시하는 회의록은 2017년 11월 기록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부산대는 당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수혜자는 지정을 지양해달라'고 권고했다. 검찰은 조 씨에 대한 '특혜성 장학금'을 겨냥한 권고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같은 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학금 지급이 문제된 건 조 씨가 아닌 다른 학생 2명이다. 폭행 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거나, 직전 학기에 징계를 받았던 학생 2명이 장학금을 지급받은 사실이 드러나 회의록에 실명까지 명시됐다. 변호인은 "2017년 4월 회의록을 보면 직전 학기에 징계받은 학생은 외부장학금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아예 학생 실명까지 회의록에 적혀 있다"며 "이후 회의록에도 '조민'이 특정된 건 없고 추천 사유를 명확히 기재하라는 권고 내용이 있을 뿐인데 왜 이런 내용은 증거로 제시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검찰이 2017년 4월 회의록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무능력의 극치고, 확보했는데 제시하지 않았다면 (기소 목적이) 진실 규명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조 씨의 장학금이 정당했다는 취지의 변론 과정에서 뜻밖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다. 임 전 부장판사는 이정주 부산대병원장(부산대 의대 교수)의 처남이자, 조 전 장관의 법대 동기다. 변호인이 제시한 문자내역에 따르면 임 전 부장판사는 '우리 자형(이 원장)이랑 전화해보니 따님이 장학금도 받고 공부도 잘해서 교수님들 칭찬이 자자하다고 합디다'라고 조 전 장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변호인은 "조 씨의 장학금에 (부산대 교수들이) 긍정적이었던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원장 측의 '작심 변론'은 당분간 법정에서 볼 수 없다. 재판부는 9일 공판을 끝으로 조 전 장관 부부의 다른 공소사실을 심리하기로 했다. 노 원장은 최종변론 때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조 전 장관 부부의 다음 재판은 2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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