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혹' 산케이 특파원은 왜 '3시간 벌'을 섰나

25일 서울고법 형사3부(박연욱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 공판에는 가토 다쓰야(사진)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의 주심이 증인으로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15년 1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회손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가토 전 지국장이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는 모습. /뉴시스

'재판 개입' 임성근 항소심 속행 공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피고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앳된 얼굴의 판사가 옆 피고인석에 앉은 선배 판사에게 말했다. 선배 판사는 말없이 증인석의 후배를 바라볼 뿐이었다. 재판 개입 혐의로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을 함께 받고 있는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그가 개입한 사건으로 지목된 재판의 주심이었던 임현준 판사의 이야기다.

25일 서울고법 형사3부(박연욱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임 판사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의 주심이었다.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임현준 판사는 재판 도중 주요 쟁점인 보도의 허위성에 판단을 내리는 등 일련의 상황이 '예상치 못했고 이례적'이라고 기억하면서도, 내막에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개입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증언했다.

◆'예상치 못했고 이례적인' 일들

가토 전 지국장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참사 대응 대신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전 배우자 정윤회 씨를 만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재판장 이동근 당시 부장판사는 2015년 3월 30일 네 번째 공판기일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재한 소문의 내용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인 점이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통상 판결문에 들어가야 할 주요 쟁점 판단이 재판 도중 내려진 것이다.

임 판사는 이날 기사의 허위성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는지 묻는 말에 "시각에 따라 다르지 않겠느냐"고 되물었지만, 이러한 '중간 판결적 판단'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다고 밝혔다. 임 판사는 "(형사재판에서 주요 쟁점을 우선 판단하는 경우는) 제 경험상 흔하지 않다. 이례적인 건 맞다"고 말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임 전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사건 당시 기획조정실장)에게 '판결 선고 전이라도 기사가 허위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전 부장판사에게 전달했다. 임 전 차장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청와대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당시 대법원 기조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 판사는 이러한 공소사실에 맞아떨어지는 증언은 하지 않았다. 이 전 부장판사가 임 전 부장판사의 연락을 받거나 논의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런 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내막이 어찌 됐든 이 전 부장판사의 중간 판단은 많은 언론보도를 불러왔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같은 날 언론사 사회부 차장 등과 접촉해 기사 분량과 유리한 논조를 부탁했다고 의심한다. 이에 대해 임 판사는 옆 피고인석에 앉은 임 전 부장판사에게 "피고인이라 부르겠다"고 말한 뒤, "임 전 차장 내지 피고인(임 전 부장판사)과 재판장(이 전 부장판사) 행동 사이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임성근(사진) 전 부장판사는 2015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판결 선고 전이라도 기사가 허위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고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임 전 부장판사의 모습. /이동률 기자

◆벌 받듯 '3시간' 선 채 질타받은 무죄 피고인

임 판사가 이례적이라고 기억한 부분은 또 있다. 형사합의30부는 애초 가토 전 지국장의 혐의를 무죄로 봤다. 공적 지위에 있는 대통령에 대한 의혹 제기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공소장에 따르면, 임 전 차장에게 '법리상 부득이하게 무죄 판결을 선고한다는 점을 밝히고 판결 선고 말미에 가토 전 지국장의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임 전 부장판사는 형사합의30부의 선고문 초고를 미리 받아 검토했다.

검찰이 확보한 '첨삭본'에 따르면 임 전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문장에 길게 줄을 긋고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할 듯'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이 첨삭본을 받아 본 임 전 차장은 '결론 부분에서 기사가 허위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설시하고,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법리적인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다는 취지를 분명하게 설명하라'고 또다시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2015년 12월 17일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후련해야 할 선고공판은 가혹했다. 선고문에는 "가토 전 지국장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조롱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자체를 희화화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행동까지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강도 높은 질타가 담겼다. 통상 선고 시간이 길면 피고인이 앉아서 선고문을 듣도록 하지만, 가토 전 지국장은 3시간에 걸친 선고공판 내내 서 있었다. 그는 선고 도중 '앉아서 듣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 판사는 "(무죄 판결하며 피고인을 질책하는 게) 이례적인지 질문하신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면서도 "그걸 넣는 게 부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렇게 매서운 질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피고인을 3시간 동안 세워둔 채 선고문을 듣게 한 것에는 "특별히 생각한 바 없지만 앉게 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피고인에게 과도한 무안을 줬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는 검사의 말을 들은 임 판사는 재차 "그렇게까지 세워둘 필요가 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은 다음 달 마무리된다. 재판부는 6월 21일을 결심 공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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