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승계 문건' 작성자 "누가 지시했는지 기억 안 나"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한 전 삼성증권 팀장이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문건 작성 배경을 묻는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남용희 기자

전 삼성증권 팀장 증인신문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한 전 삼성증권 팀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문건 작성 배경을 묻는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검찰은 이 문건을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계획안으로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20일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명에 대한 세 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지난 공판에 이어 전 삼성증권 기업금융팀 팀장 한모 씨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한 씨는 프로젝트G 문건 작성자다.

검찰은 이 문건을 2012~2015년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확보를 위해 수립된 승계 계획안으로 봤다. 또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부터 이 부회장까지 주도하고 지휘한 계획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한 씨는 프로젝트G에서 G는 '지배구조'(governance)에서 따왔으며,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선할지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모아 정리한 문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공판에는 '지배구조 조정 검토' 문건이 추가로 제시됐다. 이 문건에는 △상속세 재원 조달 △법정 상속 이슈 △에버랜드 금융 지주사 이슈 등 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요 변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은 2014년 7월 고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자, 미래전략실이 기존 프로젝트G 문건을 '업데이트'하도록 해 이 문건이 작성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 씨는 이 문건을 작성하게 된 경위와 배경 모두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씨는 작성 경위와 배경을 묻는 검찰의 질문에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요청에 따라 문건을 작성한 것 같다. 이런 것을 검토할 때는 미래전략실과 대응했다"면서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문건 내용 가운데 상속세 재원 조달은 △이 부회장의 1인 승계 △이 부회장·이부진 호텔신라 회장·이서현 삼성공익재단 이사장 등 삼남매가 모두 상속받는 경우로 구분해 쓰였다. 법정 상속 시 이 회장과 이 이사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한다고도 적혔다.

이를 두고 검찰은 '왜 주요 변수로 기재했느냐'고 물었다. 역시 한 씨는 "배경은 잘 모르겠다"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가정하고 검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이 공개됐다. 검찰은 이 문건을 이 부회장의 위법한 승계 작업의 산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이덕인 기자

이 사건 공소사실의 핵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프로젝트 챔피언'으로 이름지었다고 한 씨는 기억했다. 제일모직이 2015년 삼성물산과 1:0.35 비율로 합병됐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갖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게 됐는데, 검찰은 이 일련의 과정을 이 부회장 승계작업으로 보고 있다.

한 씨의 명료한 답은 '프로젝트 챔피언'까지였다. 어떤 방법으로 승계가 진행되든 에버랜드(제일모직 전신)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전제로 하지 않았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 씨는 "합병하는 게 반드시 좋다고 전제하지는 않았다. 합병 결과가 지배구조 측면에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시뮬레이션한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메일을 하나하나 제시했지만 한 씨는 대부분 "구체적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했다.

문건 내용대로 합병이 이뤄졌다고 지적하자 한 씨는 "(문건) 일부가 고려됐을 수 있지만 내부 의사결정에서 실제 실행까지 여러 변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무렵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유도신문을 한다'며 검찰에 항의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오래된 사항인 만큼 객관적인 이메일 내용을 먼저 말할 수 있다"면서도 "되도록 짧게 묻고 답을 길게 듣는 방식으로 해야 (검찰이) 유도신문 이의를 피할 수 있다"고 중재했다.

이 부회장 등의 다음 공판은 다음 달 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이날 공판에는 한 씨에 대한 검찰 측 주신문 4시간을 진행한 뒤 변호인 측 반대신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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