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와 폐 질환 사이' 인과성 쟁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의 항소심 재판이 18일 시작된다.
서울고법 형사2부(윤승은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4시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의 2심 첫 공판 준비기일을 진행한다. 공판 준비기일은 피고인 출석 의무는 없다.
항소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 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두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월 "CMIT·MIT 성분이 포함된 살균제 사용과 폐 질환 및 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의 성분이 이용자에게 폐 질환과 천식을 유발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다.
또 1심은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이용자의 피해 구제를 위해 기준을 점차 완화하며 피해자를 폭넓게 인정해왔다"며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 형사재판에 이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추가 연구 결과가 나왔을 때, 이 판결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다"며 "지금까지 나온 증거를 토대로 형사사법의 근본원칙의 범위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피해자들은 "내 몸이 증거"라며 반발했다.
법조계·학계에서도 '법원이 피고인의 잘못보다 과학적 규명에 더 초점을 뒀다', '살균제와 폐 질환 사이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반대로 옥시와 홈플러스, 애경산업 등 가습기 제조·판매 업체 측은 관련 민사소송에서 이 판결을 언급하며 "의료기록과 살균제 노출 근거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업체 측)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교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애경산업과 함께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하면서, 원료의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는 등 주의 의무를 위반해 9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2019년 5월 구속기소 됐다. 같은 해 9월 지병을 이유로 청구한 보석이 받아들여져 석방된 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안 전 대표는 SK케미칼에서 공급받은 원료로 2002~2011년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원료 물질인 CMIT와 MIT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아 9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2019년 6월 불구속기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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