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갈등 등 난관도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고위공직자 비리를 근절한다는 사명 아래 탄생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30일 출범 100일을 맞았다. 100일 만에 검사와 수사관 인선 등 조직 구성을 일단락하고 수사기관의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특혜 조사 논란이나 수원지검의 수사 등 검찰과의 갈등이 계속돼 난관도 이어지고 있다.
초대 공수처장으로 임명된 김진욱 처장은 지난 1월21일 출범식에서 "공수처의 출범은 우리 수사기관이 수사활동을 시작한 지난 70년 이래 역사적인 과제였다"며 "선진 수사의 전범이 되도록 초대 공수처장으로서 초석을 놓는 심정으로 임하겠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과 함께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이라고 개척자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100일간의 행보는 김 처장이 밝힌 자신감에 비해 다소 아쉬운 면도 있다는 평가다.
◆ 김학의 사건 재이첩 논란에 '흔들'
출범 약 한 달 만에 371건의 사건이 접수되고, 검사 공개 채용에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등 초기에는 '돌풍'이 부는듯 했으나 검찰로부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을 이첩받은 후부터는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달 12일 김 전 차관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하면서 기소는 공수처가 결정한다는 단서를 달면서다. 수사만 이첩한 것이고 공소는 여전히 자신들이 담당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검찰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처음 마찰을 빚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불러 면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차 논란에 휩싸였다. 조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고, 또 이 과정에서 이 지검장을 관용차로 태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특혜 조사'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김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검찰에 고발당하면서 수사 개시도 하기 전 공정성 논란에 체면을 구겼다.
검·경에 이첩한 판·검사 범죄 사건을 수사 후 되돌려 받는 내용이 담긴 사건·사무규칙 제정을 추진하면서 검찰과의 신경전은 더욱 거세졌다. 김 처장의 '조건부 이첩' 요청에도 검찰은 지난 1일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 검사를 상의없이 기소하면서 양측은 정면으로 부딪혔다. 김 처장이 언론과 거리두기를 시작한 시점도 이때였다. 수사 개시 전 안팎의 거센 '흔들기'에 직면하자 취재진에 입을 꾹 닫았다.
◆ 예상보다 적은 검사 인원에 비판도
공수처는 검사 인선 절차에서도 비판에 직면했다. 애초 부장검사 4명과 평검사 19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으나 인사위원회 회의를 통해 부장검사 2명과 평검사 11명만 추천했다. 수사관도 30명을 선발하려 했으나 적격자가 없다고 보고 20명만 선발했다. 또 13명의 검사 중 검찰 출신이 단 4명이라는 이유로 수사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에 반쪽짜리 출범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향후 수사 진행 상황을 본 뒤 신중하게 공석을 채우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공수처는 대변인 역시 공개모집 절차를 거쳤지만 적격자가 없다고 보고 임시로 기획재정부 출신을 선임한 바 있다. 만족스러운 사람이 없다면 아무도 뽑지 않겠다는 김 처장의 신념이 보였다. 또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정조준할 공수처가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수처는 인사위원회에서 논의한 후 추후 검사 충원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김 처장은 지난 19일 명화 '최후의 만찬'을 언급하면서 13명의 검사로도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공수처 검사들은 매일같이 수사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1호 수사에 착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사 실무를 위한 사건·사무규칙 제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 검찰 견제에 거세지는 돌직구
검찰의 견제가 연일 거세지자 김진욱 처장의 발언도 강해지고 있다. 이성윤 지검장 면담과 관련해 공수처가 내놓은 해명 보도자료까지 검찰이 수사 대상에 올리면서 두 기관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수원지검은 공수처의 허위 보도자료 의혹을 두고 문상호 대변인 등 공수처 주요 참고인들에게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김 처장은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소환해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좋지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일부 검찰 수사내용이 보도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공수처는 수사기법 워크숍을 개최했다며 25일 보도자료를 냈는데 피의사실공표 논란을 정조준했다. 공수처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와 피의사실공표죄를 주제로 심도깊은 토론을 진행했다"며 "수사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수사정보의 누설과 피의사실 공표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했다"고 했다. 특히 피의사실유포로 경찰관들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27일에는 출범 이후 접수된 사건이 총 966건이라며 이 중 검사 관련 사건이 42.2%를 차지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검찰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포했다는 분석이다.
◆ 100일 맞이 '1호 수사' 발표할까
100일을 맞이한 공수처는 조만간 1호 수사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1호 사건으로는 윤중천 면담 보고서 사건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 사건이나 권익위가 수사 의뢰한 김학의 전 차관 사건 등이 거론됐으나 지난 19일 김 처장은 "떠넘겨 받아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온 사건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검찰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만큼 '1호 사건'으로는 검찰을 정조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표적으로 시민단체가 고발한 '해운대 엘시티 봐주기 수사 의혹'이나 '검사 술접대 사건 부실수사 의혹' 등이다. 최근 시민단체가 고발한 수원지검의 피의사실공표 의혹도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의 출범 취지를 생각해본다면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나 수사관행 논란 등을 수사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밝혔다.
공수처는 신속한 1호 수사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모습이다. 수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려 1호 수사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현재 검사 13명을 두 팀으로 나눠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접수된 사건을 신속히 분석하고 있으며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이라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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