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의학적 증명 없어도 인과관계 판단 가능"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신장질환 판정을 받은지 4개월 만에 사망한 40대 택배회사 중간 간부가 사실상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모 택배회사 수도권 센터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A(당시 49세)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소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되돌려 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이 회사에서 20년간 일했던 A씨는 2014년 9월 건강검진에서 단백뇨가 발견돼 한 달 뒤 조직검사 결과 '미만성 막성 사구체신염이 있는 신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입원 중에도 회사 일을 처리하던 A씨는 12월부터 병가를 냈으나 이듬해 2월 합병증인 폐렴으로 숨졌다.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른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미지급 처분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했다.
2심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의 사망에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업무상 요인으로 질병이 악화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A씨의 주업무인 물류관리는 육체적으로 과중하지는 않아 사망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봤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사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수준이었던 대한의사협회의 사실조회 결과도 영향을 줬다.
대법원은 업무와 질병간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원심과 차이를 보였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질병의 주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쳐 질병을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반드시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더라도 제반 사정을 고려해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도 있다.
대법원은 A씨가 체력소모가 많은 업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수년간 만성적으로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했고 건강검진 이후에도 장시간 업무를 이어간 점에 주목했다.
신장병 판정 이후 안정이 필요하다고 의사가 당부했지만 입원치료 중에도 사무실 전화와 착신전환된 휴대폰과 노트북을 이용해 업무를 지속했다. 치료가 장기화되자 센터장과 불화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괴로운 심정을 휴대폰 메모장에 남기기도 했다.
재판부는 "신장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장시간 근로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과로 누적으로 질환이 단기간 내 자연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됐다"며 "업무상 요인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lesli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