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입수해 해외에 보도…서울시가 복원해 삼일절에 첫선
[더팩트|이진하 기자] "이곳 딜쿠샤가 한국인들에게 독립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딜쿠샤 유물을 기증한 앨버트 테일러(1875~1948)의 손녀 제니퍼 L.테일러가 26일 종로구 행촌동 딜쿠샤 개관식에서 한 말이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가 3월 1일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건물의 양식과 당시 외국인이 살았던 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딜쿠샤는 테일러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이 있다. 테일러는 1923년 딜쿠샤를 짓고 1942년 일제에 추방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붉은색 벽돌집 딜쿠샤는 2층 건물로 이국적인 모습이었지만 집안 내부 곳곳에 한국의 정서를 담은 소품들이 가득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 문을 열자 벽난로가 보였고 그 앞에는 작은 식탁이 놓여있었다.
1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공간으로 거실 벽면은 한국의 습한 장마철을 대비해 벽지를 붙이는 대신 페인트로 칠해 꾸며져 있었다. 또 반대편에는 대형 난로를 하나 더 놓아 한국의 매서운 추위에 대비했다.
1층에는 4개의 방이 있었고 곳곳에 테일러 부부의 유물이 있다. 여러 개 방에는 편지, 테일러 부부의 물건, 각종 서류 등이 전시됐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한국 민족대표 33명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로 그 옆에는 영어로 적힌 내용의 편지도 나란히 있었다.
한국에 왔을 당시 금광과 무역 사업을 하던 테일러는 미국의 통신사인 UPI(United Press International)의 서울 특파원으로 임명돼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무렵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해외에 보도했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동으로 만들어진 종과 미국식 괘종시계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1층 거실은 전형적인 미국식 가정의 모습이라면 2층은 동서양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안미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테일러 부부는 2층 거실에서 주로 여가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아끼는 공예품들이 있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한국적 소품도 다양하게 있다"고 설명했다.
테일러 부부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사랑했다. 또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금강산의 매력에 빠져 수차례 여행을 하고 그곳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2층 거실을 들어서자 벽난로를 중심으로 코너 벤치가 마련돼 있었고 벽난로 위에는 이들 부부가 수집한 고려청자, 다양한 형태의 말 모형이 있었다. 또 다른 벽면에는 자수나 그림으로 된 열 폭의 한국식 병풍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생활한 외국인의 일상도 엿볼 수 있는 것과 더불어 한국 건축사의 남다른 의미도 갖는다.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벽체를 세우고 내부에는 목조 마루를 깔고 상부에는 목조 트러스를 받친 경사지붕을 올렸다.
벽체는 일반 벽돌 쌓기와 다르게 벽돌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단열과 방음에 뛰어난 '공동벽 쌓기' 기술을 적용했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전망, 채광, 통풍이 좋도록 집을 남향으로 배치했고, 여름 더위에 대비하기 위해 거실에 넓은 창문과 개방적 베란다를, 겨울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거실 등 여러 방에 벽난로를 설치했다.
딜쿠샤는 기본적으로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서양식 집이었으나 당시 국내 환경과 여건을 고려해 건축된 점이 독특하다. 1920~30년대 국내 서양식 집의 건축기법과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현존 사례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새롭게 시민에게 선보이는 딜쿠샤 주변에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등 유적이 다양하게 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남르다"며 "시민들이 이곳을 관람하며 독립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