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정의당 지도부 등 정치권 애도 물결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영면한 가운데 온종일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백 소장의 빈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정식 조문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공식 조문이 시작되자마자 빈소를 찾았다. 박 후보는 "재벌개혁 문제나 검찰개혁 문제 등 힘들 때마다 힘내라고 하셨다.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서 힘을 합쳤어야 할 때도 만나 뵈면 늘 격려해주시고 오히려 저희를 다독거려주셨다"며 "1년 이상 투병 생활을 하셨는데 너무 빨리 가신 게 아닌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이날 오후 5시35분께 빈소를 찾았다. 이 지사는 "외로운 사람들, 절망하는 사람들과 평생 함께 해오셨다"며 "저 분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떠나셨는데 선생님께서 가셨던 길을 열심히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김제남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도종환·박용진·남인순 의원, 김상희 국회부의장도 무거운 표정으로 빈소를 찾았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과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강은미 비상대책위원장과 배복주 부대표, 장혜영·류호정 의원 등 정의당 지도부도 빈소를 찾았다. 강은미 위원장은 "민생이 어려울 때 진보진영의 큰 별이 져서 안타깝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셨던 큰 뜻을 이어받아 정의당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더 낮은 자세로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며 "영면하시길 빈다"고 밝혔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백 선생님의 마음과 열정, 기개가 있어서 질식할 수 있던 시대에도 숨을 쉴 수 있었고, 입이 막혔던 시대에도 외칠 수 있었다"며 "뜻을 잊지 않고 꼭 잇겠다는 다짐을 한다. 큰뜻이 역사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함께 빈소를 찾은 같은 당 강민정 의원과 김진애 서울시장 후보는 눈물을 보였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김원웅 광복회장, 세월호 유가족 등 시민사회 인사들도 추모에 나섰다. 김미숙 이사장은 "용균이가 사고 난 다음 빈소에 백 선생님이 몸을 부축하면서도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했고, 속상했다"며 "추모문화제에도 힘든 몸으로 오시고 이런 걸 보니까 감명받았다"고 했다.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던 백 소장은 이날 오전 4시45분께 영면했다. 장례는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산다'는 뜻으로 고인이 평생 품어온 사상이다.
백 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공식 조문이 시작되기 전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장례식 계획을 밝혔다. 빈소는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조문객 간 2m 간격을 유지하고, 음식은 제공하지 않는 등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방침이다.
위원회는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사이버 추모관도 개설한다. 사이버 추모관에는 백 소장의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이 게재된다.
조화는 받지 않는다. 위원회는 고인의 뜻을 기려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러 인사들이 보낸 조화 역시 돌려보냈다. 양기환 장례위원회 대변인은 "조화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현장에 오시면 추모 글귀를 쓸 수 있는 추모 리본이 있다. 마음을 표현하실 분들은 추모 리본을 작성해달라"고 당부했다.
백 소장의 입관식은 17일 오후 1시 반께 열린다. 19일 오전 8시 발인 후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 들러 대학로 거리에서 노제와 추모행진을 한다. 이어 오전 11시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영결식을 한 후 오후 2시 장지인 마석모란공원으로 이동한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50년대부터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67년에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 설립을 시도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뒤 구속됐다. 이후 1986년에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문제와 통일문제 등에 힘써왔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의 저서를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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