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백기완 빈소 첫날…정치권 조문 이어져

15일 새벽 별세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이동률 기자

박영선·박용진 빈소 조문…"온라인 모욕 댓글 법적 대응"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15일 영면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예비후보와 박용진 의원, 김원웅 광복회장 등 정치권 및 사회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백 소장의 빈소는 이날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정식 조문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조문이 시작되자마자 박영선 예비후보가 빈소를 찾았다. 박 후보는 "(백 소장이) 대학로에 있는 연구소에 계실 때 제가 기자로서 찾아뵙기도 했었고, 가끔 국회의원 시절에 응원메세지를 주시고는 했다"고 전했다.

박 후보는 "재벌개혁 문제나 검찰개혁 문제 등 힘들 때마다 힘내라고 하셨다.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서 힘을 합쳤어야 할 때도 만나 뵈면 늘 격려해주시고 오히려 저희를 다독거려주셨다"며 "1년 이상 투병 생활을 하셨는데 너무 빨리 가신 게 아닌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박용진 의원도 이어 빈소를 찾았다. 박 의원은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했는데 큰 영광으로 기억한다. 젊은 시절, 불공평과 불평등에 대해 항의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솔직히 두려웠는데 그때마다 '용기 잃지 마라'고 격려해줬던 어른"이라며 "선생님이 남기신 몫, 다하지 못한 것은 후배들이 짊어지고 갈 테니 영면하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던 백 소장은 이날 오전 4시45분께 영면했다. 장례는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산다'는 뜻으로 고인이 평생 품어온 사상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백 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례식 계획을 밝혔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에게도 빈소를 개방한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조문객 간 2m 간격을 유지하고, 음식은 제공하지 않는 등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방침이다.

조화는 받지 않는다. 위원회는 고인의 뜻을 기려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러 인사들이 보낸 조화 역시 돌려보냈다. 양기환 장례위원회 대변인은 "조화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현장에 오시면 추모 글귀를 쓸 수 있는 추모 리본이 있다. 마음을 표현하실 분들은 추모 리본을 작성해달라"고 당부했다.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사이버 추모관도 개설된다. 사이버 추모관에는 백 소장의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이 게재된다. 또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분향소도 설치된다.

장례위원회는 온라인상에서 고인을 모욕하는 댓글에 대해선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다. 조영선 장례위원회 법률위원장은 "견해가 다른 것은 인정하더라도 조롱과 비난, 그리고 악의적인 표현, 명예훼손은 망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법적 검토를 거쳐 향후 대응하겠다. 지금이라도 악성 댓글은 삭제하거나 조처를 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입관식은 17일 오후 1시 반께 열린다. 19일 오전 8시 발인 후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 들러 대학로 거리에서 노제와 추모행진을 한다. 이어 11시께 영결식 후 오후 2시 장지인 마석모란공원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50년대부터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67년에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 설립을 시도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뒤 구속됐다. 이후 1986년에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문제와 통일문제 등에 힘써왔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의 저서를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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