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사찰' 무혐의 윤석열…정연주와 닮은 듯 다른 듯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을 예방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징계 취소 소송 전망…임기 전에 끝나기 어려울 듯

[더팩트ㅣ박나영 기자] 서울고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판사 사찰' 의혹을 혐의 없음 처분해 징계 취소 소송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두 달 전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받은 윤 총장은 즉각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윤 총장 사건과 비교할 만한 사례로 볼 수 있는 정연주 전 KBS 사장 판결도 윤 총장 소송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 전 사장은 최근 <더팩트>와 통화에서 "법무부가 윤 총장의 감찰이나 징계 절차에서 절차적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절차를 밟는 것이 다 보였다"며 "(절차적 정당성 관련해서는) 제 케이스를 교과서처럼 보고 해임시 꼼꼼히 따지는 전례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재가로 해임됐으나 2012년 해임 처분 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윤 총장과 정 전 사장 사건은 징계 처분 자체는 물론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결국 정 전 사장은 4년여에 걸친 본안소송에서 이겨 승소했다. 해임 처분 사유 일부가 인정되지 않고 해임 절차가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로 법원은 정 전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정 전 사장은 "저를 해임하는 자리에 저를 부르지도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판결문을 보면 당시 법원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KBS 사장 해임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 "신분상의 이익을 침해하는 처분인데 그 과정에서 처분내용을 사전 통지하거나 의견제출의 기회, 소명기회 등을 부여하지 않아 절차상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심의 과정에 징계기록 열람 허용, 기피신청권 보장 등 전례없이 절차적 방어권을 보장해줬다는 입장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절차적 정당성·공정성 담보를 강조하면서 법무부는 윤 총장의 기일 연기 요청을 두차례 받아들이는 등 향후 소송을 의식했다. 징계기록 열람도 허용했으나 윤 총장 측이 등사를 요구하며 거부한 일도 있었다.

윤 총장 측은 징계 사유가 사실이 아닐 뿐더러 징계과정이 절차적으로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해왔다. 윤 총장의 법률대리인인 이완규 변호사는 당시 "징계 절차 자체가 위법하고 부당해서 승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은 징계위원 명단 공개와 기피신청 방식을 두고도 본안소송에서 다툴 것으로 보인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해임 직후 처분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없었고, 4년 가까운 본안소송에서 이긴 후에도 복귀는 불가능했다. 2017.09.12./뉴시스

징계사유의 사실관계가 어디까지 인정될지도 관건이다. 법무부 징계위는 지난해 12월 16일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월' 제청안을 만창일치로 의결하면서 6개 비위 혐의 중 △법관 사찰 의혹 △채널A 사건 사찰 △채널A 사건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등 위신 손상 등을 적용했다.

이 중 '판사 사찰' 의혹은 지난 9일 서울고검이 '혐의 없음' 처분했다. 서울고검 감찰부는 "검찰총장의 지휘를 배제한 상태에서 검찰총장을 포함해 문건 작성에 관여한 사건관계인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했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 여부에 다수의 판례를 확인하는 등 법리 검토를 했으나 검찰총장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윤 총장 측이 공개한 해당 문건에는 특정 판사를 지목해 '행정처 정책심의관 출신, 주관이 뚜렷하다기보다는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평', '행정처 16년도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고 기재된 내용 등이 있었다.

본안 소송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였던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검찰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앞서 윤 총장의 징계 효력을 중지했던 행정법원 재판부는 윤 총장을 업무에 복귀시키면서도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적절하고 차후 이와 같은 종류의 문건이 작성돼선 안된다"고 짚었다. 다만 해당 자료의 사용처, 자료 취득 방법, 작성 목적, 반복적 작성 여부 등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완규 변호사는 "(검찰의 판단을) 법원이 많이 참고할 것"이라며 "조사가 거의 안된 상태에서 문건만으로 징계를 청구했는데 검찰이 관계자들을 불러다가 조사한 결과 무혐의 결론이 났다. 징계사유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 측은 앞서 행정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신청을 하면서 본안 소송이 임기 전인 4개월 안에 끝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첫 기일도 잡히지 않아, 윤 총장 임기가 끝나는 7월 전 1심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 보인다.

정 전 사장은 징계 처분이 취소됐지만 KBS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해임 직후 처분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없었고, 4년 가까운 본안소송에서 이긴 후에도 복귀는 불가능했다. 이에 윤 총장의 직무 집행정지 효력을 중단한 법원의 결정이 과거 정 전 사장 사건과 비교되며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 전 사장은 이에 대해 "똑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 판단이 나오는 것은 법원의 자기 부정이고 자기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08년 8월 정 전 사장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KBS 사장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지만 12년 후 윤 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 처분 효력 정지 신청은 인용했다. 12년 전 법원은 "해임처분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긴급히 손해를 막을 필요가 없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윤 총장에 대해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수 있어 처분 집행의 효력을 긴급히 중단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bohen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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