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검경 수사권 성과…尹과 대립에는 '완패' 해석도
[더팩트ㅣ박나영 기자] "영원한 개혁은 있어도 영원한 저항은 있을 수 없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임식을 치른 27일 남긴 이 말은 스스로 지난 1년을 압축한 표현으로 보인다. 과천정부청사를 떠나며 추 장관은 회한이 남는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해 1월 2일 취임한 추 장관은 1년 1개월여 만에 법무부를 떠났다. 지난달 1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직 의사를 밝힌 뒤로는 42일 만에 박범계 신임 장관에게 바통을 넘겼다.
추 장관은 "지난 수십년간 지체됐던 법무혁신과 검찰개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검·경 수사권 조정 △형사·공판부 강화 △인권 수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공수처 출범은 성과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십수년째 줄다리기를 이어온 검경수사권 조정을 매듭지은 것도 마찬가지다.
'3%룰'이라고 불리는 상법 개정안과 부모의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도 성사시켰다. 증권 분야에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일반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소비자 보호와 피해구제 강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추 장관은 '형사.공판 중심'의 검찰인사와 수사지휘권 발동 등으로 임기 내내 검찰조직과 격렬한 갈등을 빚었다. 취임 직후 검찰 고위간부급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서로 의견청취 방식을 문제삼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이렇게 시작된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지난해 7월 윤 총장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된 이른바 '채널A 사건'에 대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을 강행하자 '측근 감싸기' 논란이 불거졌다. 추 장관은 자문단 소집을 중단하라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발동한 이후 처음이었다. 이후 10월에는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과 윤 총장 가족 의혹 사건 등에서 윤 총장을 배제하라며 수사지휘권을 다시 발동했다.
한달 후인 11월 추 장관은 사상 초유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를 하면서 윤 총장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의 직무집행 정지 효력 중단 결정으로 윤 총장은 일주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이후 검사징계위원회가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은 다시 징계처분 효력도 정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윤 총장이 다시 업무에 복귀하면서 추 장관은 "혼란을 끼쳐 송구하다"며 사과하고 본안소송에서 다투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조계 안팎에서 추 장관의 '완패'라는 해석이 나왔다.
추 장관은 논란이 많았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사문화되었던 장관의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권한을 행사하여 검찰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분명하고도 불가역적인 역사적 선례를 만들어 냈다"며 ""개혁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소란도 있었지만, 정의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대정신의 도도한 물결은 이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또 "개혁은 어느 시대에나 계속되지만, 저항은 그 시대와 함께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윤 총장에 징계 처분이 나온 다음날 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퇴의사를 밝혔다. 차기 장관 임명을 앞두고 장관업무를 이어나가던 중 서울동부구치소에서 1000명이 넘는 대규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윤 총장 밀어내기'에 골몰하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국민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추 장관은 이임사에서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이자,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앞으로 '정치인'으로서 그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다만 서울고검에서 항고 심리 중인 아들 군 복무 특혜 무혐의 건 등 다양한 고소·고발 사건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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