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입양 '뚝'…"사회적 억압 작용"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얼마전 중학생 A양은 집에 돌아와서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로부터 언짢은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공개입양 가정에서 자란 A양에게 친구 어머니는 대뜸 "너는 괜찮지?"라고 물어봤다. A양은 순간 질문의 속뜻을 모두 파악했다. 애써 웃으며 대답했지만, 돌아온 질문은 더 노골적이었다.
"혹시 너는 엄마, 아빠한테 맞은 적 없었니?"
B군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1학년생인 B군 역시 입양가정에서 자랐다. 학급 친구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화두에 오르며 "입양부모는 살인자, 학대자" 등의 말이 나왔다. 친구들은 B군이 입양자녀라는 사실을 모르지만, 사춘기 B군의 마음속은 복잡해졌다.
학대로 세상을 떠난 16개월 정인이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 13일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에서 양모 장 씨가 살인 혐의를 극구 부인하자 공분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논란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번 사건에서 '입양아' '양부모'라는 점이 강조되면서 입양가정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입양기관과 입양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입양이 필요한 아이들이 입양 가지 못하고, 크게 희생당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개인이 잘못했으면 거기에 맞는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오히려 입양 절차를 문제 삼고, 바꾸라고 한다"고 했다.
실제 입양을 준비하던 예비 입양 부모들이 입양을 포기하기도 했다. 김 국장은 "예비입양 부모들은 지금 입양 진행이 거의 멈췄다. 하루에 평균 두 명의 아이가 입양돼야 하는데 예비 입양 부모 풀 자체가 줄어들었다"며 "이번 사태가 과연 입양문제 때문인가. 지금 입양가정은 스스로 검열하면서 지낸다. 서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입양 이야기는 피하고 있다. 사회적 억압 기제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가정 내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총 42명이었다. 이 중 입양가정은 1건이었다. 친부모가정이 52.4%로 다수를 차지했다. 접수된 3만45건의 아동학대 중 입양가정에서 발생한 경우는 84건으로 0.3% 수준이었다
언론의 보도 태도도 입양 가정의 상처를 키운다. 정인이 양모 장 씨가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홀트아동복지회와 법원이 입양을 허가했다는 취지의 보도도 한 예다.
김 국장은 "단 한 번이라도 어떤 일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내원한 사람은 아예 입양 자격이 없는 것인가. 마치 입양에 하자가 있다거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추측성 보도로 자극적으로 쓴다"며 편견을 키우는 언론에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국내입양아동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1년 1548명이던 국내 입양아동은 2019년 387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입양 과정에서 부모들을 검증하는 절차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낙인을 없애고,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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