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시절 노 전 대통령 인터뷰에 매료…10년 후 대선 캠프 합류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한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재선에 실패했다. 민주자유당 허삼수 후보에 밀려 정계 입문 후 처음 낙선을 경험했다. 하지만 5공 비리 청문회에서 활약과 3당 합당 거부에 이어 지역감정의 벽에 맞선 노무현의 모습은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후배 법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법연수생자치회에서 펴내는 잡지 '사법연수'는 낙선 후 휴식 중이던 전 대통령의 인터뷰를 실었다. 당시 편집장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박 후보자는 23기 사법연수생들을 상대로 '존경하는 법조인'이 누구인지 의견을 모았고, 노무현 변호사를 최종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인터뷰가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박 후보자는 밝혀왔다. <더팩트>는 인터뷰가 실린 '사법연수' 92년·여름호를 입수해 살펴봤다.
◆ "법조인은 대체로 이기적" 거침없던 노 대통령
넉넉하지 않은 소농 집안, 상고 졸업 후 막노동과 취업 등 평탄치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인생에 박범계 후보자는 동질감을 느꼈을 수 있다. 1급 장애인 부모를 둔 박 후보자는 아버지마저도 소식이 끊겨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방황하던 박 후보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이후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친 후 늦은 나이에 법대에 입학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당시 젊은 연수생들의 애정은 인터뷰 기사 첫 문단부터 드러난다. '법조인의 사명을 법률을 통한 사회 제반 문제 해결에 있다고 한다면 노동문제, 인권문제 등도 예비법조인의 지위에 있는 우리의 관심 밖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노력한 선배 법조인으로 많은 동기연수생이 꼽은 노무현 변호사와 자리를 함께하고 그분의 삶과 생각을 들어봤다.'
당시 대담에는 범경철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정렬 변호사 등 박 후보자의 동기 연수생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활동,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췄다. '노동사건이나 시국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냐'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영화 '변호인'에도 등장하는 '부림사건'을 꼽았다.
"제가 처음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게 됐다. 그런데 그때 피의자들에 대한 접견을 57일간이나 금지하고, 가족들에게 구속 통지도 하지 않는 반인권적 상황을 보게 됐다. 당시 그들의 정서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변론 중 고문받은 사실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가 검사와 한바탕 다투기도 하고, 청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다. 그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변호사가 변혁운동의 장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정치와 법조의 관계' 등을 묻는 말에 노 전 대통령은 거침없이 신념을 드러냈다. 그는 "저는 변혁의 장이자 그 중심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며 '법조인들의 이기성'을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직과 그것을 운영하는 공통된 의사를 결집해 힘을 모아 추진하는 것이 정치라고 본다. 그런데 법조인은 대체로 이기적이라서 협조하지를 못하며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못하다. 이것은 법조인이 자기 세력을 규합하는 데도 익숙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또한 법조인은 융통성 없이 합법의 테두리에 묶이는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유신과 5공 시절 사법부·검찰의 과거를 돌아보고 독립성을 지키는 법조인이 될 것도 후배들에게 강조했다.
"판사가 모두 지사일 수는 없다.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사법부가 독립성을 갖고 있었다면 유신이나 5공 같은 통치가 가능했겠는가. 이는 법원과 검찰 모두의 자존심 문제다. 후배 법조인들은 판례에만 묶여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판사가 되실 분들은 사건의 진상을 잘 이해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박 후보자는 이 인터뷰 원고를 받아든 순간부터 '인간 노무현'에게 푹 빠졌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통해 "원고를 받아보고, 읽어보고, 편집하고, 싣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됐다"고 전했다. 과거 2012년 총선 출마 당시에도 "사법연수생들이 뽑은 존경하는 법조인 1위 노무현 변호사를 우리 편집부가 인터뷰하면서 그분의 생각과 비전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이는 인터뷰가 실린 '사법연수'의 머리말에서도 드러난다. 편집장으로서 '이제는 변명할 때이다'라는 제목으로 머리말을 쓴 박 후보자는 '법조사회는 이익집단'이라는 비판을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밝힌 시각과 같은 맥락의 내용이다.
"'법조사회가 거대한 자기만족적, 폐쇄적 이익집단'이라는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평가를 모른척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성적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사회 일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법률가의 모습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박 후보자가 약 9년간의 판사 생활을 끝으로 법복을 벗게 만든 것도 노 전 대통령이다. 박 후보자가 정계 입문을 결심한 건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대전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박 후보자는 당시 김민석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후보 캠프에 합류하자 곤경에 빠진 노 전 대통령을 돕기위해 판사직을 내던지고 캠프 법률특보로 합류했다.
◆ '편집장' 박범계·'편집위원' 이용구…장·차관으로 재회?
'사법연수'에는 노 전 대통령 인터뷰 외에도 눈에 띄는 대목이 많다. 바로 박 후보자와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인연이다. 사법연수원 23기로 동기인 박 후보자와 이 차관은 각각 자치회 편집장과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박 후보자가 2008년 1월 출간한 '내 인생의 선택'이라는 자서전에도 이 차관과 인연이 언급된다.
이 차관은 박 후보자가 편집부 연수원생중 제일 나이가 많다며 편집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11호 코너 중 '사법연수원 문화의 현주소'라는 좌담회에도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연수원을 수료하기까지 총 4권의 '사법연수'를 함께 만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나란히 판사에 임용됐으며 재직 시절에는 개혁 성향의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서 같이 활동했다. 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후 장관에 임명된다면 둘은 편집장, 편집위원 사이에서 장관, 차관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sejungki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