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경찰 수동적 업무태도 등 구조적 문제"…재량권·전문성 필요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에 이른 '양천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크다. 세번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경찰은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고 평가받지만 역량에 대한 불신은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해 1월 양부모 안모 씨와 장모 씨에게 입양된 정인 양은 그해 10월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입양된 지 271일 만이다. 온몸에 피멍이 들었으며 장기 파열 흔적과 골절이 발견됐다. 사망 20여일전 아이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소아과 의사가 직접 신고하기에 이르렀지만, 경찰은 학대의 고의가 없었다고 봤다. 경찰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큰 원인으로 일선 경찰의 수동적 업무처리 문화 등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자체가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할 업무다. (아이의) 겉모습, 의학적 소견, 가정 내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학대를 판단하는데 (일선 경찰관들은) 전문적 식견이 부족하다"며 "여기에 더해 문제가 생기거나 소송에 휘말렸을 때는 경찰관 개인이 책임을 진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아동학대) 사건 자체가 인사고과나 근무평정에서 크게 혜택을 보는 것도 아니니 피상적으로만 보고 넘어가게 된다"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업무태도가 문제지만, 현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아동보호에 관한 전반적인 인프라 자체가 취약한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경찰에도 아동 전문가가 있기는 하지만 일선 경찰서별로 수준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현장출동은 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순찰지구대나 파출소에 있는 경찰관이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경찰관들의 아동학대 사건 대응 능력을 향상시킬 조건 마련이 급선무로 꼽힌다. 이웅혁 교수는 "경찰관들의 업무 태도를 개선하기 위해선 현장 대응시 재량 폭도 인정해주고,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며 "소송 가능성이 있을 때는 조직 내에서 적극적인 제도 지원도 있어야 하고 법적 근거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민관 협력 시스템 구축 필요성도 지적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동 문제 전문가들에게 긴급 상황이 있을 때 빠르게 의견을 묻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에 있는 인적자원을 이용해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한두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합하는 등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고 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경찰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경찰 출신인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아동학대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경찰의 출입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범죄가 발생할 우려만 있어도 가해자를 격리할 수 있는 긴급 임시조치 청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임시조치에 가해자의 경찰관서 유치를 포함하고 위반하면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6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양천경찰서장은 대기발령 조치하고, 후임으로 여성·청소년 분야에 정통한 서울경찰청 총경을 발령했다.
김 청장이 밝힌 대책은 크게 5가지다. △경찰서장에게 즉시 보고하는 체계 수립 및 지휘관 직접 관장을 통한 책임성 강화 △반복신고 모니터링 등 아동학대 대응시스템 개선 △경찰청 아동학대 전담부서 신설 및 국수본-자치경찰 간 협력체계 구축 △학대혐의자 정신병력·알코올 중독 및 피해아동 진료기록 확인 의무화 △국수본 중심의 아동학대 전담 TF 구성 등이다.
김 청장은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경찰의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 보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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