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 "지금이라면 朴 독대 안 한다…국민께 송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 측은 정권의 압박으로 뇌물을 건네게 됐으며, 위법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을 열었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하고,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제공한 말 '라우싱'을 몰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날 특검은 "본건 범행은 피고인 이재용이 대통령의 뇌물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편승함으로써 직무와 관련한 이익을 얻기 위해 뇌물을 제공한 범행"이라며 "피고인은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지금까지도 허위 진술과 주장으로 일관하면서 진실 은폐 시도를 계속해 헌법상 국민 주권의 원리를 재차 침해한 죄질이 불량하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파기환송심 재판의 쟁점이던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특검은 "삼성 준법 감시제도 실효성은 독자적 양형 요소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반성을 구성하는 사실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며 "준법 감시제도 실효성 여부를 빌미로 양형 구간을 이탈하는 것은 부당의 정도를 벗어나 헌법상 평등의 원칙, 법원조직법을 위반하는 위헌·위법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준법감시위 실효성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였다. 특검은 "전문심리위원의 실효성 점검 결과를 살펴보면, 3명 위원 모두 절대다수 항목에서 부정적 평가를 했다"며 "특히 결정적 항목이라고 할 수 있는 총수와 직접 관련된 아홉 개의 점검 결과는 비참할 정도로 부정적 결과가 도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판부께 마지막으로 간청하는 것은 피고인들에 대해 과도한 엄벌을 해달라는 것도, 피고인들이 우리 사회에 공헌한 바를 무시하라는 것도 아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유지되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가치인 법치주의의 가치와 헌법 정신을 수호해달라는 것"이라며 "피고인 이재용에 대해 징역 9년과 라우싱 몰수를 각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 실장과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에 대해서도 특검은 징역 7년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특검은 황모 전 삼성전자 전무에 대해서도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최종변론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의 직권남용적 요구에 의한 기업의 불법 후원 사건으로 구체적인 본질은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수동적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이라며 "그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위법 또는 부당한 직무 집행을 요청하거나 청탁한 점이 없고 뇌물 청탁의 대가로 어떠한 특혜도 받은 적도 없다"고 변론했다.
변호인은 "특검은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적극적 뇌물 공여의 근거로 삼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며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질책하고 질책받는 관계로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변호인은 "(공소사실상) 청탁 대상은 승계 작업인데 대법원판결에 따르면 이는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기업의 지배 구조 개편으로 그 성격은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라며 "승계작업을 청탁했더라도 구체적 직무 집행 내용이 특정될 수 없기 때문에, 청탁 내용 역시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승계작업 자체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지배권 강화는 불법이 아니고 계열사 이익에 부합하는 면도 있다"는 주장도 폈다.
준법감시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독립된 외부 조직으로서의 준법감시위가 설치되고 준법 의지와 문화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있었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 의결과 같은 절차적 제도와 규제를 마련하는 등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반영해 보완했다"고 역설했다.
최후진술에서 이 부회장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오는 중국 회사를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아버지) 이건희 회장께서 갑자기 쓰러지셨고 경황없던 차에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자리를 가졌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자리를) 안 했을 것"이라며 "그 일 때문에 회사 임직원이 오래 고생하고 많은 국민께 좋은 모습을 못 보여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솔직히 힘들었다"면서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게 제 불찰과 잘못, 책임이었다. 제가 못나고 부족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5월 밝힌 제 평소 소신대로 제 아이들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언급되는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도 다시 나오지 않도록 노조와 활발히 소통하겠다"며 "제가 한 다른 약속, 삼성이 국민에 한 약속도 제가 책임지고 지키겠다. 절 믿어달라"고 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 삼성 임원들에 대한 선처도 구했다. 이 부회장은 "같이 계시는 제 선배님들은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며 "저를 꾸짖어달라. 이분들은 너무 꾸짖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측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삼성그룹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말 세 마리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승마지원 용역 대금 등 298억 원가량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7년 2월 기소됐다. 뇌물을 건네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89억여 원의 뇌물을 건넸다고 판단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말 세 마리의 소유권이 최 씨 측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뇌물 액수를 36억 원가량만 인정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말 세 마리도 박 전 대통령 측에 대한 뇌물로 인정하고 항소심 재판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대법원이 일부 혐의를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내면서 이 부회장의 양형이 파기환송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재판부 권고에 따라 만든 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해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된다고 판단되면, 이를 참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개된 재판에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재판부 추천), 홍순탁 회계사(특검 추천), 김경수 변호사(이 부회장 측 추천)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단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해 법정에서 의견을 밝히고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최종 보고서는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에게도 공개됐다.
이 부회장 등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은 내년 1월 18일 오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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