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영구미제' 된 고유정 의붓아들 사건…재심도 불가능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5일 오전 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의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뉴시스

법원 "고유정이 살해 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대법원이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37)에게 무기징역의 형을 확정했지만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5살 아이가 숨진 이 사건은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5일 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 혐의로 기소된 고 씨의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고 씨는 지난해 5월 제주도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 씨를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의붓아들 홍모 군을 살해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1·2심은 강 씨 살해 혐의를 유죄로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홍 군 살해 혐의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도 1·2심 판단을 유지했다. 홍 군이 함께 잠을 자던 아버지 홍모 씨(고유정의 재혼한 남편)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 재판부는 "설령 홍 군이 고의에 의한 압박으로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행위를 고 씨가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홍 군은 남편 홍 씨가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홍 군은 지난해 3월 2일 충북 청주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였다. 당초 사건을 수사한 청주 상당경찰서는 친부 홍 씨의 과실치사 혐의에 무게를 뒀다. 홍 씨의 잠버릇에 아이가 눌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씨 사망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은 수사 끝에 고 씨가 홍 군을 살해했다고 보고 검찰에 넘겼다.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홍 씨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미 홍 군의 사망 7개월 후였다.

대법원은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대로 무죄로 판단했다. /뉴시스

검찰도 고 씨가 잠든 홍 군의 등 위에 올라타 숨을 쉬지 못하도록 뒤통수 부위를 10분가량 눌러 살해했다고 봤다. 범행 도구 등 직접 증거는 없었지만 홍 군이 숨진 시각으로 추정되는 새벽 시간대에 고 씨가 휴대전화와 PC를 사용한 기록과 '질식사' 등을 검색한 고 씨의 PC 기록 등을 정황증거로 삼았다. 프로파일러와 전문가들도 고 씨가 홍 군을 결혼생활에 걸림돌로 생각해 살해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직접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래보다 왜소한 체격의 홍 군이 친부의 몸에 눌려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홍 군의 사망시각 추정이 어렵고, 고 씨가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해서 깬 채로 집안을 돌아다녔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살해 동기도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 재심 신청 가능?…유죄로 바꿀 방법 없어

외부인이 드나든 흔적이 없는 집에서 홍 군은 외력으로 질식해 사망했지만 범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5살배기의 죽음은 사실상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됐다.

경찰 관계자는 판결 이후 "범죄를 입증할만한 직접 증거가 나오면 재심 신청이 가능하겠지만, 사실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심 신청은 불가능하다.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확정한 이상 고유정에게는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게 됐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심은 유죄 판결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무죄 판결이 난 것을 유죄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420조에 따르면 재심은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그 선고를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해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심은 유죄를 받은 사람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청구하는 것이다.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고유정에게는 죄를 다시 물을 수 없다.

홍 씨의 법률대리인인 부지석 변호사는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이 재심을 청구한다니 얼토당토 하지 않다"며 "헌법상 이중처벌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초동 수사했던 경찰관들이 모르기 때문에 미제 사건이 남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유정의 남편 홍 씨는 판결 직후 변호인을 통해 참담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뉴시스

◆ 범인은 없고 피해자만 있는 사건

이같은 상황을 두고 부실한 경찰 수사 문제가 지적된다. 고씨가 홍 군 살해의 용의선상에 오른 건 5월이다. 사건 후 이미 두달 넘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사건 발생 당시 고 씨가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검찰의 주장도 경찰의 추가 포렌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간접 증거 일부마저 증명력이 오염된 것이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경찰의 초동수사가 잘못돼 증거를 확보하지 못 한 상태에서 공소유지가 됐다"며 "검사는 공판에서 공소유지를 하기 위한 고도의 개연성을 구성하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홍 씨는 판결 직후 변호인을 통해 "참담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고유정의 홍 씨의 잠버릇에 관한 진술이 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는데 홍 씨는 별다근 잠버릇이 없다고 주장한다. 고씨의 일방적 진술이라는 설명이다.

홍씨 측 부지석 변호사는 "고씨의 거짓 진술을 믿고 진행한 수사가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며 "법원은 직접적 증거로는 범인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범행 전후 고유정의 수상한 행적을 주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부 변호사는 "살인범은 없고, 살해당한 사람만 있는 또 하나의 미제사건으로 종결된 것에 개탄을 금할 수 가 없다"고 밝혔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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