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백원우·박형철 '동상이몽'…일방 통보 vs 최종 결정

감찰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속행 공판…'3인 회의'에 증언 엇갈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을 중단하고 사표 수리에서 끝내자는 결론이 나왔다는 '3인 회의'를 놓고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과 백원우 민정비서관의 기억이 엇갈렸다.

박 전 비서관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백 전 비서관이 감찰을 무마하기로 말을 맞춘 뒤 자신에게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백 전 비서관은 민정수석실 원형테이블에 셋이 둘러 앉아 회의를 했으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표 수리로 정리하자"는 최종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김미리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조 전 장관과 백 전 비서관, 박 전 비서관의 속행 공판에선 두 비서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박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 인사인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던 중 여권 인사들의 '유재수 구명운동'이 일어나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구명운동을 의식해 보고서를 매우 강한 어조로 쓰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 전 장관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첩보를 처음으로 보고받았을 때 "당연히 감찰하라"고 했지만, 이후 "유 전 부시장이 사표를 내는 선에서 처리하기로 했다"며 감찰 중단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조 전 장관은 박 전 비서관·백 전 비서관과 회의를 거쳐 감찰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이날 박 전 비서관은 이같은 회의를 사실상 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이나 감사원 이첩을 염두에 두고 있던 박 전 비서관으로선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검사: 날짜를 기억 못 하는 2017년의 어느 날, 조 전 장관이 증인을 불러 "유재수가 사표낼 예정이니 그 정도 선에서 처리하기로 했다"면서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을 지시한 사실이 있죠?

박 전 비서관: 그렇게 말씀하신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유 전 부시장이 사표낼 예정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한 적 있습니까?

박 전 비서관: 없습니다.

검사: 그러면 조 전 장관은 어떻게 유 전 부시장이 사표를 낼 예정이란 사실을 알죠?

박 전 비서관: 당시 현장에 백 전 비서관이 있었습니다. (조 전 장관이) 백 전 비서관과 먼저 상의하고 그 이후 저를 불러서 알려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검사: 백 전 비서관이 조 전 장관과 사전에 상의하면서 사표 의견을 개진했고, 조 전 장관이 이에 동의해서 감찰을 중단하기로 한 뒤에야 증인을 불러서 알려줬다는 겁니까?

박 전 비서관: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반발하지 않아 조 전 장관께서도 "3인 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감찰 실무진인 특별감찰반원들은 조 전 장관의 결정에 상심하고 분노했다고 한다. 이에 박 전 비서관은 이인걸 당시 특감반장에게 "반원들 잘 다독여라"고 귀띔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조 전 장관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사적인 문제가 나와 감찰을 종료했다", "비위 첩보 자체에 대한 근거가 약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에도 박 전 비서관은 "사실과 다르다"며 "일종의 방어 논리"라고 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지난 5월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어 증인석에 앉은 백 전 비서관은 3인 회의는 실재했다며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백 전 비서관은 "수석님(조 전 장관) 방에 작은 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평소에는 꼭 구두를 신고 수석님 방에 갔는데 그날따라 슬리퍼를 신고 갔다"며 "박 전 비서관이 첩보 보고서를 브리핑하듯 읽어 주며 수석님께 (수사기관 이첩 등을) 건의드렸고, 저는 사표를 받는 선에서 끝내자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은 양측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백 전 비서관이 3인 회의의 기억을 확신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당시 백 전 비서관은 골프에 막 관심이 생기던 찰나였는데, 유 전 부시장이 뇌물로 받았다는 골프채 브랜드가 뇌리에 남았다는 것이다.

검사: 당시 박 전 비서관이 브리핑했다는 보고서 내용 중 기억나는 점이 있습니까?

백 전 비서관: 셋이 조그만 테이블에 모여서 박 비서관에게 내용을 쭉 보고 받았는데, 어느 정도 (유 전 부시장의 비위 내용을) 이해해 세가지 혐의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검사: 그 세가지 혐의는 항공권 및 골프채 수수와 골프텔 이용으로 보이는데, 당시 골프채를 막 잡은 시점이라 유 전 부시장이 수수한 골프채 브랜드가 기억 난다는 취지십니까?

백 전 비서관: OOO라는 브랜드 때문에 세 혐의를 브리핑받은 대목이 분명히 기억 납니다.

김경수 경남지사 등 여권 인사에게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선처를 청탁 받았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백 전 비서관은 "없던 일로 해달라는 게 아니라 억울하다는데 하소연이나 들어주라는 뜻"이라며 "유 전 부시장과 통화해보니 해명보다 억울하다고만 하더라. 이런 식의 민원 전화는 너무 많이 받아서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후 이같은 상황을 조 전 장관에게 보고했더니, 조 전 장관은 "좀 더 알아보라"는 일상적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의 운영위 답변이 허위라는 박 전 비서관의 주장에 대해선 "답변 준비는 반부패비서관 소관", "조 전 장관이 답할 일"이라며 대답을 피했다.

조국(오른쪽) 당시 민정수석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2018년 5월 14일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날 재판 내용을 종합하면 조 전 장관의 감찰 중단 지시는 분명히 있었지만 박 전 비서관은 이를 일방적 무마로, 백 전 비서관은 회의를 거친 최종 결정으로 기억하는 셈이다.

백 전 비서관은 이처럼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로 두 사람의 '출신'을 들었다. 정치인 출신인 자신과, 검사 출신인 박 전 비서관의 입장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백 전 비서관은 "청와대 현직 정무수석(전병헌)이 피의자로 불려간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유 전 부시장 사건을 다룰 만한 여건이 안 됐다. 감찰에도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끌고 가는 건 국정에 부담만 된다고 생각했다"며 "지난 정권 당시 청와대 특감반의 월권이 문제된 적이 많아서 청와대의 과도한 업무(권한 남용)일까봐 그런 걱정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박 전 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라 작은 것도 강하게 처벌하는게 맞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며 "저는 정치인이라 모든게 사법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석에 보고할 때는 법률가의 조언과 정무적 조언이 같이 올라가서 균형잡힌 판단을 이끌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사님께선 저희 셋의 진술 차이를 벌려서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게 만드시려 하시지만, 셋 다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조 전 장관 등의 다음 공판은 11월 3일에 열린다. 백 전 비서관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을 마무리한 뒤, 감찰 중단을 최종 지시한 조 전 장관이 증인석에 앉아 직접 입을 열 전망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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