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 사건 항소심 첫 공판…"피해자와 합의 중"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성형외과 전문의가 직접 수술하는 것처럼 환자를 속여 실제로는 치과·이비인후과 의사에게 '대리 수술'을 시킨 혐의로 법정구속된 성형외과 원장이 항소심에서 "대리 수술이 아닌 협진"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최한돈 부장판사)는 13일 사기 등 혐의를 받는 성형외과 전문의 유모 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유 씨는 2012년 11월~2013년 10월 환자 33명을 성형외과 전문의가 직접 수술하는 것처럼 속여 1억 5200여만 원의 수술비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주는 급여를 아끼려고 이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유 씨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4곳에 다른 의사 명의로 병원을 열어, 복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한 의료법 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향정신성 약품 관리대장을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도 있다.
지난 8월 유 씨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하며 유 씨에게 징역 1년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재판부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악용해 환자를 기망했다"고 판시했다.
유 씨는 이 중 둘 이상의 의료 기관을 차명으로 개설한 의료법 위반 혐의는 인정했지만, 대리 수술과 약품 관리대장 허위 작성 혐의는 부인했다.
유 씨 측 변호인단은 유 씨의 행동이 사기 혐의로 형사처벌할 수준인지 따져야 한다고 변론했다. 아예 의사가 아닌 간호사와 병원 직원 등에게 수술을 대리한 것이 아닌 동료 의사와의 협진이라는 취지다. 변호인은 "원심은 상담한 의사와 실제로 수술한 의사가 다르다는 단순한 논리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며 "의사들끼리 협업하고, 현장에는 수술을 더 잘 하는 사람이 투입되는 이런 일들이 개인 병원에선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또 변호인은 환자들은 통상 의사가 아닌 병원의 명성을 보고 찾아오기 때문에, 상담한 의사와 실제로 수술한 의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속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했다.
유 씨의 행위가 유죄로 판단되더라도 피해자 다수와 합의한 만큼 양형에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다. 변호인은 "유·무죄와 상관없이 '수술에 불만을 가진 사람'(피해자)이 33명인데, 10여 명과 합의하고 피해 금액도 공탁했다. 불만을 해소하려고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유 씨 측은 이 사건 고발 과정에도 의문을 품었다. 유 씨의 병원이 크게 성공하자, 이를 의식한 다른 성형외과 의사들이 유 씨의 환자들을 찾아 다니며 형사 고발을 종용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은 "성형외과 의사들이 모인 협회는 이 사건 피해자를 모집해 '고소할 생각이 있느냐'고 전화로 물은 뒤, 고소 의사가 있다고 하면 대리수술 환자로 기재했다"며 "전화를 받은 사람 중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도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고발 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은 환자들을 특정해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또 위법한 대리 수술인지, 단순 협진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동료 의사 2명과 병원 직원 등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3일 속행 공판에서 변호인의 입증 취지 등을 수렴한 뒤, 구체적인 증인신문 기일을 정할 방침이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검찰은 원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한편 이같은 유 씨의 '유령수술' 의혹은 성형외과 의사 커뮤니티에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을 하고 있다"는 글이 지난 2018년 8월 올라오면서 더욱 불거졌다. 이 글을 작성한 의사 A씨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 10일 법원은 "대리수술 위험을 고발하는 공익 정보"라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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