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후 가을철 침수차 매매, 3년 전 청주 침수차 수출과 똑 같아
[더팩트ㅣ인천=이효균·남윤호·이덕인·남용희 기자] '전손 처리된 침수차가 폐차 대신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3년 전 청주 폭우 이후에도 지적된 바 있으나 여전히 시정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팩트> 취재팀은 역대급 장마와 폭우로 침수차가 사상 최대치로 늘어나자 50여일 간의 취재 끝에 지난 18일 「[단독] '침수차 유통 소문은 사실!'…폐차 대신 매매된다(영상)」 보도로 침수차 유통 실태를 고발했다. 폐차 대상인 전손 '침수차'가 공업사와 매매 단지를 거쳐 해외로 수출되는 전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 추적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이는 지난 2017년 기록적인 중부지방의 폭우 이후 지적된 <더팩트>의 침수차의 유통 현장 보도 「[단독]'물폭탄' 청주 침수차 '변조 수출'」(2017년 9월 20일 ) 내용과 판박이인 것으로 드러나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폐차 처리돼야할 '전손 침수차'가 법 규정 미비와 행정 당국의 소극적 관리 감독으로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 '침수 차량'과 '일반 차량' 폐차 구분 불명확, '음성 유통' 빌미
차량 관리 담당 부서인 국토교통부 측은 "현재 보험사가 침수 전손처리 결정한 차량은 전량 폐차말소처리하여 원칙적으로 유통을 차단하고 있으므로 해외 수출 차량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침수 전손 차량은 폐차이행확인제를 통해 전량 폐차토록 하고 있으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제138조)에 따른 일반 차량의 폐차말소 후 수출 규정을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선 침수가 아닌 일반 차량에 대해선 폐차업자가 폐차 말소하고 수출 신고하거나 수출업자에게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손 침수차량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침수차 폐차가 일반차량 폐차처럼 둔갑해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 것은 명확하게 '전손 침수차는 해외 수출이 안 된다'고 시행규칙에 규정되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다 관리 감독의 소홀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판박이처럼 '폭우 다음 침수차 유통'이 되풀이 되고 있는 이유다.
사실 '침수차'의 유통 이슈는 항상 사회적 문제로 제기돼 왔다. 매년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반복되고 있고 이로 인한 피해는 침수차를 구입하는 사람과 함께 도로 위에서 주행을 하는 운전자들의 몫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이와 같은 '침수차' 피해를 막기 위해 폐차이행확인제를 실시, 모든 침수차는 말소 처리돼 국내 시장에 다시 유통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침수차 피해 호소는 끊이지 않고 있다.
◆ 2020년 침수차 유통, 2017년 청주 침수차 수출 실태와 판박이
지난 2017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팩트> 취재팀은 지난 2017년 9월 「[단독]'물폭탄' 청주 침수차 '변조 수출', 불법 유통 현장 확인」 보도를 통해 '전손 침수' 처리된 침수차가 폐차 이행되지 않고 수리 후 해외로 수출되는 과정을 밀착 취재해 보도한 바 있다.
취재 당시인 2017년 7월 16일 청주에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226mm의 폭우가 쏟아져 1300여 대의 침수차가 발생했다. 약 일주일 후 보험 처리를 위해 모인 침수차들은 폐차장이 아닌 인천 미추홀구의 공업사로 이동했다. 번호판을 제거하고 실내를 말리고 정비소를 옮겨가며 수리를 하는 모습은 2017년 취재 당시나 2020년이나 다르지 않다.
3년이 지났지만 전혀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시 청주에서 유통된 침수차는 50일간 정비를 거쳐 송도중고차수출매매단지로 향해 해외로 팔려갔다. 2020년에도 침수된 차들이 같은 과정으로 송도중고차수출매매단지로 향했다.
◆'음성 유통' 부추기는 폐차이행확인제도는 '반쪽'
2017년도 취재 당시 기사에 전부 담지 못했지만 '침수차' 집결지에서 많은 차들이 폐차장이 아닌 다른 장소로 향했다. '침수차' 유통에 대한 법규나 제도 마련이 미비했다는 반증이었다. 침수·대형사고 차량의 폐차 말소를 의무화하는 폐차이행확인제도 이듬해인 2018년 4월에 시행됐다. 국토교통부는 폐차이행확인제를 실시하며 침수차의 중고차시장 불법 유통을 원천 봉쇄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침수차 음성 유통'을 막기엔 폐차이행확인제는 반쪽 제도에 불과하다. 해당 제도가 규정한 전손 처리 차량은 자동차 보험 중 자기차량손해담보 설정을 통해 보험비를 보상받은 차만 구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차'보험이라 불리는 자기차량손해담보 설정을 하지 않은 차 중 침수된 차는 애당초 집계 자체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 차량이 2만 1194대 발생했다. 2012년도 2만 3051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침수차 유통 위험성이 여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자차보험(자기차량손해담보)으로 접수된 건만 집계할 수 있다. 자차로 접수하지 않았을 경우 보험사에서 알 수 없다"라며 "침수(차)는 아무래도 더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해보험협회가 2020년 9월 태풍 하이선 피해 포함 접수된 침수 피해 차량은 2만 1194대다. 집계된 침수차는 자기차량손해담보를 설정한 보험 가입자의 수만 집계된 것으로 실상 침수 피해 차량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 홍기원 이태규 의원 등, 침수차 관련 법안 발의
정치권에서도 침수차 유통에 대한 피해 심각성을 인식, 법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은 손해보험협회 접수 자료를 통해 최근 10년간 침수 중고차 거래 시 품질·부당행위 등으로 인한 피해상담 건수가 2686건이며 그 중 피해 구제 건수는 109건으로 평균 4%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또한 2020년 피해 상담 건수는 48건으로 피해구제는 1건에 불과했다. 이어서 자동차매매업자가 매도 또는 알선시 매수인에게 침수 사고 사실을 전달하지 않은 채 매매하는 경우가 발생해 피해상담 및 구제신청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또 지난 15일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중고차 소비자가 침수 자동차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보험회사의 공시의무를 강화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사가 자동차의 침수 등을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 해당 자동차의 차대번호 등을 공시할 것을 법률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자동차의 특성상 침수 차량은 수리 후에도 고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나, 침수 여부가 의무적으로 공개되지 않아 중고차 구매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면서 "명절과 단풍놀이 시즌을 맞아 중고차 수요가 높아지는 이때 침수 차량의 차대번호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해 중고차 시장에서의 소비자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전손 침수차 해외 수출 방지 위한 개선책 마련 예정
전손 침수차는 폐차돼야 한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국내에선 폐차 대상인 '침수차'가 변칙적으로 국외 수출되고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138조(해체재활용대상자동차장치) ②항에는 '자동차해체재활용업의 등록을 한 자가 폐차를 요청받은 자동차 또는 해체한 장치 중 수출신고를 하고 수출하거나 수출업자에게 판매한 자동차 또는 장치에 대하여는 제1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시행규칙에는 침수 전손 차량에 대해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폐차 요청받은 자동차'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수출업자들이 "우리는 잘못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고 있다. '전손 침수차량 폐차, 수출 금지'란 규정이 명시돼야 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침수 전손차량의 해외 유통은 수입국 국민들의 안전 위협뿐만 아니라, 국가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침수 전손 차량이 수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에 대해 관련 업계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문제 인식과 대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또한 "국토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동차365 사이트의 중고 수출 차량 정보를 통해 국외 바이어가 침수 전손차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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