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증언 거부합니다"…사람들은 모르는 '피고인의 권리'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3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 속행 공판에 나와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조 전 장관의 모습. /이새롬 기자

조국부터 사법농단 법관까지…'피고인 권리' 현주소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00여개의 질문에 증언을 거부하면서 증언거부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최근 사법농단 사건 재판 등에서도 관행으로 여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과 미흡한 수사기록 등을 지적하며 '피고인의 권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본인과 가족을 보호할 최소한의 권리

3일 정 교수의 속행 공판에 출석한 조 전 장관은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르겠다"며 모든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본인 또는 친족의 형사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조 전 장관의 경우 본인 역시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고, 아내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기 때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으로 규정한 권리임에도 검찰은 "증언을 거부하지 말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라"며 증언을 촉구했다. 조 전 장관은 끝까지 증언을 거부했다. 하지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재판에 나가선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입을 열거나, 예정된 신문사항을 우회해 던진 질문에 걸려 들어 가족인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형사처벌에서 본인과 친족을 보호한다는 인권적 측면이 있지만 부정적 선입견도 크다. 증언을 거부하는 증인을 "형사소송법상 규정된 권리행사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죄를 숨기느라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정 교수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피의자 신분의 증인을 법정에 불러 신문한 다음, 이 내용을 바탕으로 증인을 재판에 넘기는 검찰의 관행을 지적했다. 증언거부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증인은 본인 또는 가족을 형사재판에 넘기는데 '공헌'하는 비인륜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 정 교수 재판의 증언거부 사태를 놓고 "증언거부권이 법정은 물론 우리 사회 내에서 부정적 인식을 가진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입증해야한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적절한 증언거부권 행사 역시 꼭 짚고 넘어갈만한 문제"라고 봤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의 증인이 증언거부권 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재판에서의 피고인 및 증인의 권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뒤 처음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정 교수의 모습. /이새롬 기자

◆재판 전날 벼락치기?…수사기록의 중요성

수사기록 열람·등사가 이뤄지지 않아 재판이 수차례 헛바퀴를 돌린 일도 있었다. 정 교수 역시 수사기록을 제공받지 못한 변호인이 모두진술을 거부하며 공판준비기일이 두 차례나 공전됐다. 정 교수의 오촌 시조카로 사모펀드 관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모 씨 측은 재판 전날 오후에야 22권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교부받아 변론 준비에 차질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조 씨 재판 역시 준비기일 2회를 기록 열람 공방에 썼다. 해가 바뀐 지난 4월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 사건 재판에서도 재판부가 "피고인 측에게 기일변경 신청서가 여러번 들어올 정도로 수사기록 열람·등사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초 무렵부터 본격화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재판에선 검찰 수사기록과 공소장에 대한 변호인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연루된 법관 중 가장 처음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방대한 수사기록에 비해 검찰의 열람·등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견디지 못한 변호인들이 집단 사임하는 곤욕을 치렀다.

수사기록은 수사기관의 피의자에 대한 신문 조서나 참고인들의 진술 조서, 증거 자료 등을 말한다. 피의자가 기소된 뒤엔 재판에서 유죄를 위한 증거로 제출된다. 피고인 측은 방어권을 보장 받고 변론을 준비하기 위해 수사기록을 열람해야한다. 현행 형사소송법 266조의3은 검사에게 수사기록 등에 대한 열람·등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검찰은 지체없이 기록을 복사해 제공해야만 해당 자료를 증거로 쓸 수 있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수사기록을 알아야 피고인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열람·등사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하면 공소기각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선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지적도 나왔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란 혐의 외 무관한 내용을 공소장에 기재해, 판사가 피고인에 대한 예단을 갖게 하는 것이다. 수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재판에서 변호인 측이 이같은 문제를 제기해 재판부는 "정식 공판에서도 공소장이 문제될 경우 공소기각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 전 차장에 수사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 측은 공소사실상 사후에 생긴 일까지 기재해 피고인을 '엮었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의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 문국현 전 장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구체적 범죄 행위를 특정하고 형사 책임의 유무와 범위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하다"며 공소장일본주의를 엄격하게 보지 않았다.

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부 혐의에 대해 공소장일본주의 위배가 있었다고 판단,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의 모습. /남윤호 기자

판례는 다소 들쑥날쑥이지만,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면 원칙상 법원은 공소장에 흠결이 있다고 판단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에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부는 보석 취소 결정에 불복한 이 전 대통령을 6일 만에 석방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형사소송법 410조는 즉시항고 제기가 있을 때 구속집행을 정지하도록 규정하는데, 재항고와 관련해선 이같은 규정이 없다. 보석 취소 결정에 대한 재항고는 '즉시항고'와 동일한 성격이라며 구속집행이 정지돼야 한다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에 "법령 해석의 여지가 있을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상 기본 원칙을 따른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법조인은 "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이같은 판단을 내렸다면 바람직한 일"이라며 "다른 시민들의 재판에서도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권리가) 지켜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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