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통진당 소송' 판사들의 회식에선 무슨 일이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4차 공판에 조한창 서울행정법원 수석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이새롬 기자

임종헌 전 차장 54차 공판…조한창 수석부장 증인석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조한창 전 서울행정법원 수석 부장판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은 사법연수원 동기 사이다.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하고 식사를 하는 등 절친했다. 조 부장판사는 후배들과 재판에 관해 할 말이 있을 때, 각 잡고 딱딱하게 논의하기 보다 회식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편이었다.

조 부장판사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4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유는 어쩌면 이 '식사와 회식' 때문이었다.

조 부장판사는 2015년 2월~2016년 2월 서울행정법원 수석 부장판사로 근무했다. 그가 행정법원에 몸 담을 당시 화두는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이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헌재)에서 정당해산 결정을 하며 의원직을 잃은 의원들이 행정법원에 "의원직 지위를 돌려 달라"며 낸 소송이었다.

2015년 5월26일 점심 시간, 조 부장판사는 이규진 전 실장에게 "맛있는 거 사줄테니 밥 먹자"는 제안을 받아 서울 강남의 어느 초밥집에 갔다. 이 전 실장은 초밥 한상과 함께 한 봉투를 건넸다. 행정13부에 배당된 김미희 전 통진당 국회의원 등 5명이 낸 지위 확인 소송에 관한 문건이 담겨 있었다. 인용과 기각, 일부 인용 등 여러 결론에 따른 근거와 파장이 기재된 보고서였다. 예상 주문(판결의 결론)도 포함됐다. 특히 각하 결정에는 '부적절'이라는 평가가 달렸다. 이규진 전 실장은 이 문건을 행정13부 재판장인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문건을 본 조 부장판사의 뇌리에는 여러 생각이 스쳤다. 처음에는 귀찮았다. 또 결정 근거와 예상 주문까지 기재된 문건은 판결문과 다름 없어서 일선 재판부에 전달하기 찜찜했다. 신념이 강하기로 정평이 난 반 부장판사라서 더 그랬다. 조 부장판사의 기색이 심상치 않자 이규진 전 실장은 "잘 읽어보고 공부해서 재판부에 잘 말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1~2주 뒤 조 부장판사는 결국 이 문건을 파쇄해 버렸다.

다만 조 부장판사는 한참 뒤 마련된 회식 자리에서 반 부장판사에게 "각하 결정에 법리적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반 부장판사는 예상대로 탐탁치 않아 했다.

검찰은 의원직 상실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고 생각한 대법원이 서울행정법원의 재판에 개입했다고 본다. 특히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소송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각하' 결정은 특히 꺼린 것으로 조사됐다. 헌재가 이미 결정한 사안이라 법원은 판단할 수 없다는 '저자세'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다.

검찰은 조 부장판사에게 이규진 전 실장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런 걸 준 것 자체가 귀찮고, 좀 싫은 일을 시켰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판결문 형식의 문건을 담당 재판부에 전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면서도 "이규진 전 실장은 제 사법연수원 동기였고, 저는 수석부장판사였던 여러 사정 때문에 (이규진 전 실장의 부탁을) 자르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평판 걱정'을 했냐는 질문에는 "인사 문제는 걱정하지 않았고 조한창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판을 걱정했다"고 대답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5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임 전 차장 측 변호인단이 바라보는 점심식사와 회식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이미 법관 경력 20년 이상의 고등부장판사인 증인이 이규진 전 실장에게 지시나 압박을 받을 위치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평소 절친한 사이인 조 부장판사를 불러 국회의원이 연루된 중요 사건에 관한 논의를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사건 피고인인 임 전 차장은 "오늘 같이 (점심 식사에) 나오려고 했는데 일정상 못 나왔다"는 이규진 전 실장의 말에서만 등장할 뿐, 문건 작성부터 전달까지 관여한 바가 없다고 변론했다.

반 부장판사에게 각하 얘기를 전달한 상황에도 집중했다. 이날 신문 내용을 종합하면, 조 부장판사는 판사들과 재판에 관해 딱딱하게 논의하기 보다 회식 자리에서 가볍게 다루는 편이었다. 반 부장판사와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회식도 다를 바 없었다. 구체적 법리를 따지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또 조 부장판사는 "회식 중 생각난 김에, 상대방(반 부장판사)이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게 얘기를 꺼냈다"고 설명했다.

이규진 전 실장이 건넨 문건으로, 재판이 좌지우지되지 않았다는 것이 변호인 측 반대신문의 핵심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이 지난 5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조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말미, 법원행정처의 요구에 반 부장판사를 포함한 후배 법관들이 혹여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밝혔다.

"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고등부장판사 이런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열심히 일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법원행정처 등 외부에서 누가 얘기하는 건 제가 다 안고 덮어버리는 식으로 해왔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행정적 요구를 되도록이면 중간에서 희석시키면서, 우리 부장님들이 부담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저 스스로는 20년, 30년 판사 하면서 그렇게 모나지 않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만약 부장님들, 판사님들이 부담감을 느끼셨다면 제가 전달을 잘못한 제 불찰입니다. 개인적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조 부장판사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반 부장판사는 2015년 11월 "이들의 의원직 상실은 헌재가 헌법 해석·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으로 내린 결정으로, 법원은 이를 다투거나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통진당 의원들이 낸 소송을 각하했다. 이규진 전 실장이 건넨 문건과는 반대되는 결정과 판시였다.

이후 반 부장판사의 근무평정에는 "일부 사건에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 검토가 부족한 채 자신의 주관을 강하게 반영했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논리적 모순이나 입증 책임에 반하는 판시도 보임", "꾸준히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나 질적인 면에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음" 등의 인색한 평가가 달렸다.

초안을 작성한 조 부장판사는 이같은 표현을 쓴 적 없다고 이날 법정에서 증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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