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후회·호소…사법농단 산증인들의 눈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가 내린 판단에 왈가왈부하느냐고 기분이 나빴어야 했는데…. 안위를 더 걱정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모 판사, 2020년 6월22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50차 공판)
증인석에 앉은 판사는 눈물지었다. 법복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온 판사도 낯설었지만, 엄숙한 재판 지휘 대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군 판사는 더욱 낯설었다. 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재판에서는 그다지 드문 광경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부 근간을 이루는 대법원에서 수년에 걸쳐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벌어졌다는 그 내용만큼이나 낯선 광경의 연속이다. 법관들 사이에서도 엘리트 집합소로 알려진 법원행정처 차장이 수의를 입고 검찰청에 들어섰다.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되는 일도 있었다.
사법농단 사태의 충격과 낯설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사건이 사건인만큼 그들의 재판에는 전·현직 법관들이 증인으로 나온다. 몇 시간 내내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으로만 일관해 검찰은 물론 재판장과 방청객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하는 이도 있는 반면, "사법농단 재판이 아니라면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싶은 상황도 연출된다. 누군가는 검찰의 말까지 가로막으며 사건 당시 상황을 해명하기도 하고, 영어로 빽빽히 쓰인 자료를 들고와 실물화상기에 띄운 채 사법행정권을 설명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낯선 광경은 법복을 벗고 눈물을 흘리는 법관이다.
'안위를 걱정했다'는 정 판사도 그 중 하나였다. 지난 22일 이 사태의 '키맨'으로 불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0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양승태 대법원의 '역린'이었던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한 판사였다. 2015년 임관 4년차의 좌배석 판사였던 정 판사는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 합의부원으로서 한 사립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기간을 교직원 재직 기간에 합쳐 달라며 낸 소송을 한정위헌 취지로 헌법재판소(헌재)에 올리기로 했다.
한정위헌이란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단순위헌과 달리 법원의 조항 해석이 위헌적이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최고의 사법기관은 대법원이어야만 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양승태 대법원은 이같은 결정을 직권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고, 결정문마저 법원 내부 전산망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5년 뒤 사법농단의 산증인이 된 정 판사는 법정에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면서도 "제가 잘못된 행동을 해 선배들이 고쳐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지하철을 타고 가며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연임을 걱정했다는 기억을 떠올릴 때는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사법농단 재판이 늘 그렇듯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시각,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정 판사는 눈물을 흘렸다. '초보 판사'였더라도 자신의 결정을 누군가 취소하라고 했을 때 기분 나빴어야 했는데 연임과 승진 등 안위를 걱정한 과거의 자신이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정 판사가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면, 참회의 눈물을 흘린 이도 있었다. 사법농단 재판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해 5월, 임 전 차장의 22차 공판에 출석한 조모 부장판사는 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내며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시한 손해배상 소송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
검찰은 당시 대법원의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정권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재판을 지연시켰다고 보고 있다. 조 부장판사가 작성했던 문건은 이같은 공소사실에 힘을 더해줄 '물증'이었다. 조 부장판사가 쓴 문건에는 재판 지연에서 나아가 피해자들이 소송을 취하하도록 해야한다는 방안까지 담겼다.
조 부장판사는 당시 재판에 개입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으며,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인 만큼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만든 보고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신문 말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말에, 경위가 휴지를 건넬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조 부장판사는 "당시 항상 모든 경우에 대비해 준비해뒀다가 설명하고 재판부를 방어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정말 무슨, 다른 사건도 아니고 '위안부' 피해자 사건의 시나리오를 정해놓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날선 검찰 주신문을 마치고 변호인이 건넨 한마디에 그만 울음이 터진 원로 법관도 있었다. 사태의 정점에 서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52차 공판에 출석한 윤인태 전 부산고등법원장은 피고인들과 인연이 깊었다. 양 전 원장의 고등학교 후배였고 박 전 처장과는 사법연수원 12기 동기였다. 고 전 대법관과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32년 간의 법관 생활을 끝으로 변호사가 된 윤 전 원장은 부산고법 수장으로 있을 당시 접대를 받은 법관의 비위를 무마하고 오히려 근무평정을 최고 등급으로 매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 배경은 법관의 부패 행위가 알려져 법원 위상이 떨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숨기는게 낫다는 대법원의 인식이었다. 양 전 원장 등은 이 사건으로 직무유기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반대로 이들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서기호 전 판사에 대해서는 석연찮게 연임에서 탈락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주신문에서 윤 전 원장은 비위 법관에게 최고평정을 준 것에 대해 "깜빡 누락했다"는 증언을 거듭했다. 이에 검찰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며 신문에 날을 세웠다. 강도높은 검찰 측 신문이 끝난 뒤 막역한 사이의 박 전 처장 측 변호인이 꺼낸 한마디에 그는 눈물을 쏟았다. 변호인이 "증인은 법리와 신문에 두루 밝으실 뿐 아니라 인품이 대단하시고 명성이 높으신데, 저희 피고인과 변호인은 이렇게 증인께서 증인으로 나와 진술하도록 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자, 윤 전 원장은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의 눈물에 재판은 잠시 중단됐다.
임 전 차장은 이 사건으로 가장 먼저 재판을 받게된 만큼, 재판에서 감정을 드러낸 일도 많았다. 때로는 맞은 편에 앉은 검사를 고발하겠다며 언성을 높였고, '현역' 시절 자신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몰아세웠던 후배에게 멋쩍은 듯 웃으며 사과하기도 했다.
그의 감정은 추가 구속기로에 섰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지난해 5월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검찰은 임 전 차장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달 8일 열린 심문 기일에서 임 전 차장은 울먹이며 "석방될 수 있다면 재판부가 염려한 증거인멸 우려나 도망할 우려가 있는 행동은 삼가며 성실하게 재판에 임할 것을 다짐한다. 오해 받을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며 근신, 또 근신하겠다"고 호소했다. 매 재판마다 방청을 오는 아내를 언급하며 "판사로서 남편을 바라보던 집사람이 매일 피고인이 된 저를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평조차 안 한다"고 말해, 방청석의 아내 역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의 눈물 읍소에도 법원은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임 전 차장은 "피고인을 범죄자로 처단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법관 기피 신청을 냈다. 기각과 불복을 거듭하며 8개월간 먼 길을 돌아 기피한 재판장과 재회한 임 전 차장은 지난해 3월 보석 석방됐다. 기피한 재판장과 짧은 안부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 등 비교적 상황이 나아진 그였지만,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렸던 선임을 법정에서 마주하자 또 눈물을 보였다. 그의 선임도 마찬가지였다.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그의 44차 공판 증인으로 나왔을 때의 일이다. 2014~2015년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던 그는 임 전 차장의 선임이었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 전 차장과는 대법원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함께 논의했던 '추억'이 있었다.
이러한 추억이 '농단'이 된 현실이 속상해서였을까. 직접 반대신문에 나선 피고인석의 임 전 차장과 증인석의 강 전 원장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임 전 차장이 "아무래도 증인과 저 사이에 오해가 있는 듯 한데, 2014년 모든 구성원이 상고법원을 위해 전심 전력을 다할 때 여야 국회의원의 설득이 가장 큰 과제가 아니었느냐"며 울먹이자, 강 전 원장은 짧게 "예"라고 말한 뒤 곧바로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판은 80차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충실한 '심부름꾼'이었다는 임 전 차장의 공판 역시 50차를 넘겼다. 방대한 공소사실, 고령인 피고인의 건강 악화 등 예기치 못한 이유로 재판은 장기화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한 검사는 재판장에게 "도대체 언제쯤 이 사건을 마치려고 하시냐. 내년말이냐, 내후년이냐"며 목에 핏대를 세우기도 했다. 재판이 3심까지 갈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최종 선고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피고인들은 모든 혐의를 부인 중이다. 사실관계는 맞아도 위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정말 잘못했는지, 잘못했다면 이를 법원이 심판할 수 있을지 결론을 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일부 사건의 1심 재판이 무죄로 결론난 만큼 그들에게 책임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법관들을 피고인석이나 증인석에 앉혀 눈물을 흘리게 한 책임은 있지 않을까. 피고인석에 앉아 함께 법관의 자부심을 나눴던 이들의 눈물을 지켜보는 것도 어쩌면 이미 죄값을 치르고 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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