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생존권 및 집회의 자유 침해" 헌재 결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경찰이 고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행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물대포에 맞은 고인이 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숨진 지 4년여만이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재판관 8대1 비율로 "살수차를 이용해 일직선 형태로 물대포를 쏜 행위는 고인의 생존권 및 집회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반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심판대에 오른 조항은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4항과 6항, 살수차 운용지침 중 직사살수 관련 내용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4항은 "위해성 경찰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같은법 6항은 "위해성 경찰장비의 종류 및 그 사용기준, 안전교육·안전검사의 기준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서술한다. 또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시행령 13조1항과 경찰장비관리규칙 시행령 97조2항에 대한 심판도 청구됐다.
유족들은 위헌 주장 이유로 "살수차 사용요건과 기준이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추상적으로만 규정된 상태에서 바로 대통령령에 위임되고, 다시 여러 하위 위엄 법령 등을 거치는 등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불명확한 지침에 따른 살수행위로 고인의 생명권, 신체를 보전할 권리, 행복추구권, 집회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심판 조항에 대해서는 "침해의 직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직사살수 행위 자체는 위헌이라고 분명히 했다.
헌재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또 우리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로서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구인 백남기는 이 사건 집회에 참여했다가 직사살수 행위로 상해를 입고 약 10개월간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다 사망에 이르렀다"며 "이 사건 직사살수행위는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직접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청구인들이 백씨가 침해받았다고 본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격권 △행복추구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등에 대해서는 "직사살수 행위와 가장 밀접하고 제한의 정도가 큰 주된 기본권인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 침해 여부를 판단한 이상 나머지 기본권은 별도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낸 이종석 재판관은 백씨의 심판청구 부분에 대해 "공동 심판 참가 신청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다. 직사살수 행위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백씨는 지난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병원에 옮겨졌지만 의식불명에 빠졌다. 백씨의 가족들은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와 근거 규정 등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같은해 12월 헌법소원을 냈다. 백씨는 이듬해 9월 사망했다.
한편 법원은 지난해 11월 백씨의 사인은 경찰이 쏜 물대포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는 백씨의 사인을 '병사'로 적은 서울대학교병원 백선하 교수에 대해 유족들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백씨는 경찰의 직사살수로 숨졌기 때문에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며 총 4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백 교수 측 변호인단은 백씨가 물대포를 맞은지 10개월이 지난 뒤 발생한 심장 쇼크를 직접적 사인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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