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도 분분…"형법보다 성범죄 공소유지 힘써야" 의견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텔레그램을 이용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수십명을 성착취한 혐의로 구속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에게 성범죄 혐의가 아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법조계는 조 씨가 각 대화방마다 관리자를 두고 업무를 지시한 정황에 비춰 범죄 단체로 볼 수 있다는 시각과, 단체로 보기는 부족하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형법 114조에서 규정하는 범죄단체조직죄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범죄다. 목적으로 삼은 범죄에 따라 처벌 수위가 결정된다. 박사방이 범죄단체로 인정되면 목적인 성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
이른바 N번방 사태에 범죄단체조직죄가 언급된 건 24일 법무부가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하라"고 검찰에 지시하면서다. 27일 서울중앙지검은 조 씨를 불러 조사를 벌이는 한편 "범죄단체 성립 여부와 가상화폐 등에 대한 몰수추징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조 씨의 박사방은 범죄단체일까.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면 범죄단체는 다수의 사람들이 일정한 범죄를 한다는 공동의 목적 아래 이뤄진 계속적인 결합체여야 하고, 그 단체를 주도하는 최소한의 통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조직폭력배를 떠올리기 쉽지만 통솔 체제를 갖추고 지속적인 범행을 벌였다면 보이스피싱 등 사기 사건에도 적용된다. 2018년 1월 법원은 농아를 대상으로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인 사기단 '행복팀'을 범죄 단체로 인정하고 수괴와 간부 6명에게 징역10~20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사건을 맡은 창원지법 형사4부는 "행복팀은 투자금을 받는 팀장급 이상 조직원이 계속적으로 결합된 조직으로 총괄대표, 지역대표 등 통솔체계를 갖춰 형법 114조가 정한 범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을 범죄단체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 2015년 1월 대구지검이 적발한 보이스피싱 조직을 최초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듬해 5월 대법원은 이들에게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 목적으로 구성된 특정 다수인의 계속적인 결합체로 통솔체계를 갖췄다"며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조 씨는 성 착취 영상 거래 대화방을 수위별로 3개를 만들어 운영했다. 각 대화방에는 관리자들이 있었고 조 씨는 이들을 '직원'으로 호칭하며 범행을 지시한 걸로 조사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 씨가 공동 목적을 지닌 이들을 모아 단체를 결성한 건 아니지만, 범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리자들이 합류해 각자의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봤을 때 범죄단체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태근 법률사무소 신록 변호사는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성행하면서 단체로서 성격이 뚜렷하지 않아도 범죄 목적이 뚜렷하고 업무를 분배해 범행을 한 정황이 있으면 범죄단체조직죄로 의율된다. 박사방 역시 조주빈이 범행을 하며 뜻을 같이하는 구성원들이 생긴 걸 자연스러운 범죄단체 결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각 방마다 관리자를 두고 업무를 분담해 계속적인 범행을 저지른 정황 역시 혐의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박사방을 범죄단체로 보는 건 물론 지속적으로 돈을 지불하며 영상을 구매한 사람들도 '가입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N번방 사건 피해자 법률 지원에 나선 장윤미 변호사는 "대법 판례에서 공통적으로 판시한 점이 통솔지휘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 박사방의 경우 수괴격인 조주빈이 각 방에 관리자를 두고 업무를 지시한 정황이 있어 범죄단체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박사방을 포함해 N번방과 고담방 모두 회원이 가입해 자신의 신원까지 증명하며 돈을 주고 영상을 구매하는 과정이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회원이 없으면 돌아갈 수 없는 체계인 걸 감안할 때 가담 정도가 큰 유료회원들까지 조직 구성원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범죄단체로 보기에는 단체 결성 과정이 모호하고 체계 역시 미비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는 "범죄단체조직죄라는 죄명 그대로 범죄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해야 하는데 조주빈이 피해자를 협박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르려는 목적은 확실해 보이지만 단체를 조직했다고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조주빈과 일당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있다고 해도 한 범죄 단체의 수괴와 조직원의 관계보다는 공범관계에 가깝다"고 봤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 역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 만한 사안이긴 하나, 재판에서 관리자를 두고 업무를 분담했다는 것만으로 입증해 유죄 판단을 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법으로 넓히기 보다 유사강간 또는 강제추행 간접정범으로 기소해 공소유지에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8년 2월 대법원은 피해자를 협박해 음란 행위를 시킨 20대 남성에 대해 "피해자 신체를 도구로 삼아 추행 행위를 한 건 강제추행죄 간접정범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사건 가해자 역시 스마트폰 채팅 앱을 이용해 미성년자를 협박했다는 점에서 N번방 사건과 유사한 맥락이다.
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피해자들을 그루밍하고 협박해 그 신체를 도구로 이용한 정황이 뚜렷해 충분히 입증 가능한 사안"이라며 "박사방뿐만 아니라 N번방, 이같은 범행이 벌어지는 대화방 운영자들에게도 모두 적용 가능한 혐의라 이번 사태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