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최서원 등 대기업 출연금 요구 '강요죄' 아냐" 재확인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발단이 된 케이스포츠재단(K재단)의 설립허가 취소를 대법원이 최종 확정했다. 2016년 1월 재단이 설립된 이래 4년여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K재단이 "재단 설립 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설립 취소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20일 밝혔다.
K재단은 스포츠 융성을 목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도로 설립됐다. 하지만 삼성·롯데·SK 등 전경련 소속 40개 기업에서 288억원을 불법 모금하는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농단 사태 규명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
2018년 3월 당시 문체부는 K재단의 설립을 취소하면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불씨가 된 미르재단도 함께 설립을 취소했다. 미르재단의 청산 절차는 같은해 4월 마무리 됐다. 설립 2년 6개월여 만이다. 이에따라 대기업들이 미르재단에 출연한 486억원 중 462억이 국고로 환수됐다.
K재단측은 문체부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 모두 문체부 손을 들어줬다.
1심(서울행정법원 제6부)는 지난 2018년 7월 "애초 재단 설립 허가 자체에 하자가 있으므로 이를 취소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등이 기업들에 강요해 출연금을 납부하게 하는 등 재단 설립 과정에서 위헌적이고 위법한 공권력이 행사됐다. 공권력이 사인의 이익을 위해 동원돼 자금을 강제로 받아낸 결과물인 K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할 공익상 필요성이 막대하다"며 재단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9년 4월 2심(서울고등법원 행정5부) 법원 역시 K재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을 유지하며 K재단 설립 취소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문체부가 K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에 공무원의 직무상 범죄가 개입된 사실을 간과한채 재단 설립을 허가한 데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K재단 설립허가 취소로 위법한 공권력 행사의 결과를 제거하고 법질서를 회복해야 할 공익상 필요가 재단과 재단 임직원들이 입게되는 사익침해 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원심이 대기업들의 출연행위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하다고 본 부분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2019년) 8월 29일 이 사건 관련 국정농단 형사재판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 씨 등이 대기업들에 재단(미르·K재단) 설립을 위해 출연하도록 요구한 행위가 강요죄의 구성요건인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사건 1·2심 모두 전원합의체 판단 전 선고가 내려진 만큼 "최 씨 등이 대기업에 출연금을 요구한 행위는 강요죄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는 취지다.
대법원 판결 확정에 따라 K재단 청산 절차도 속도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K재단 측이 2018년 8월 출연 기업(40개)들에 출연금 반환 의사를 물었을 때만 해도 현대·기아자동차 등 34개 기업이 돌려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삼성과 SK그룹 6개 계열사는 출연금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통상 기업들이 출연금 반환을 정식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출연금 중 남은 금액은 국고로 환수된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이 대기업 출연금 모금 행위는 강요가 아니다"고 판결해 기업들이 출연금을 돌려받을 법적 근거가 부족해졌다. 미르재단에 이어 K재단 설립 출연금 288억여원 중 남은 230여억원이 국고로 환수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1심 판결문에 따르면 K재단은 지난 2016년 1월 12일 문체부에 설립허가 신청서를 접수한 다음날인 13일 법인 설립이 허가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가 이처럼 신속히 법인 설립을 허가한 사례는 미르와 K재단 두 곳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하루만에 허가가 난 경우는 4건으로 알려졌다. 다만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등 대부분 국가적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에 한정돼 궤를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