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변호사 vs 세무사 17년 갈등…"납세자 새우등 터진다"

대한변호사협회(이찬희 협회장·사진)가 지난해 4월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 앞에서 세무사 등 법조유사직역 통폐합 집회를 개최한 가운데 변호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새롬 기자

헌재까지 오가며 첨예한 대립…"피해는 결국 국민 몫"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변호사가 세무 업무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에서 표류하고 있다. 임시국회 회기는 17일까지지만 여전히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 해 법안이 20대 국회와 함께 폐기될 가능성도 크다.

변호사들에게도 세무대리를 하게 하되 기장 업무에 제한을 둔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직역간 갈등과 국회의 지지부진한 논의로 납세 의무를 가진 국민들이 세무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 당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당 개정안은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받은 변호사들(2004~2017년 합격자)에게 세무대리를 허용하되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확인 등 기장 업무는 제외하도록 했다. 첨예한 쟁점인 변호사들의 세무 업무 제한에 국회 법사위원들도 좀처럼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헌재까지 다녀온 '해묵은 갈등'

세무 업무를 둘러싼 변호사와 세무사들의 충돌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과 함께 세무사 자격까지 자동으로 부여받은 변호사들은 세무대리등록부에 등록을 거친 뒤 정식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 하지만 2003년 12월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세무사만이 세무대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세무사법이 개정되며 갈등은 깊어졌다. 2017년 12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는 세무사법 조항이 폐지되기 전까지 배출된 1만8000여명의 변호사들은 세무사 자격을 얻고도 세무사로 등록하지 못해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었다.

국세청에서 세무대리업무등록갱신 신청을 반려당한 한 변호사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왔다. 2018년 4월 헌재는 "2004∼2017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며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받은 자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란 위헌이지만 바로 해당 조항이 삭제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예상돼 일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되, 별도로 정한 기한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결정이다. 세무사법의 개선 입법 시한은 2019년 12월31일이었으나 지난 1월1일부로 대안없이 해당 조항의 효력이 정지됐다. 이를 이유로 국세청은 변호사를 포함해 세무사 자격 시험 합격자까지 등록을 일체 거부해 대기 중인 신규 세무사만 700여명에 달한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4월 세무사 자격을 부여받은 변호사 업무를 제한하는 세무사법 제6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더팩트DB

◆'기장 업무 제한' 맞서다 입법 시한 넘겨

헌재 결정에 당국도 세무사법에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후속 조치로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 영역을 허용하는 한편 장부작성 대리·성실신고 확인 업무 등은 전문적 회계 지식이 요구된다는 이유로 제외한 법안을 내놨다.

이에 법무부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는데 업무를 제한하는 건 위헌"이라고 맞섰다. 국무조정실의 조율을 거쳐 세무 교육 이수를 전제로 변호사들이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는 정부안까지 도출됐다.

국회에서도 기재부 제안과 마찬가지로 기장 업무를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이 발의됐다. 곧이어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를 전면 허용한다"는 정반대 내용의 의안을 발의하는 등 대립이 이어졌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는 수차례 논의 끝에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제한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법사위로 넘어간 세무사법은 별 다른 논의도 이뤄지지 못한 채 헌재가 정한 입법 시한을 넘겼고 결국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게 됐다. 세무 업무의 시작인 세무사 등록에 관한 조항이 실효되며 세무 분야는 입법 공백에 따른 혼란을 겪고 있다.

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세무사법 처리에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결국 기장 업무를 놓고 위원간 의견 차이는 여전했다. 여상규 위원장은 "법률 해석에 권능을 가진 법무부에서 반대한 내용을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며 논의를 유보했다.

2018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뒤 치열한 공방이 있었던 세무사법 개정안은 결국 5일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사진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청 내 본회의장. /국회사진취재단

◆"원래 변호사 업무" vs "회계지식 필요"...양측 평행선

법조계와 세무업계 역시 기장 업무 제한을 놓고 평행선을 달린다.

변호사들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무 업무는 자신들의 고유 업무였지만 변호사수가 부족해 국세청 출신에게 맡기기 시작한 게 세무사의 시초라고 설명한다.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 대변인(법무법인 예율)은 "세무 업무는 세법에 근거한 것이고,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가 하는 게 맞다. 원래 변호사의 업무였던 걸 일부라도 제한하는 건 위헌"이라며 "수만 명에 달하는 법률 전문가들이 세무 업무를 자유롭게 하게 되면 결국 수임료도 내려가고 질 높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권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세무사는 "세무란 결국 회계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는 더욱 그렇다"며 "지금도 조세 불복 소송 등 법원으로 넘어간 사건은 이미 소송대리권을 가진 변호사가 맡고 있다. 변호사 시장이 치열해지니 회계 업무까지 가져 가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무사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만료와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신규 세무사들의 발이 묶였다. 세무 대리인의 조력을 받아야 할 국민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학교 경영학부)는 "이 개정안 처리가 지체되면 변호사들과 신규 세무사들도 입법 공백으로 세무사 등록을 못해 업무를 못 보고 납세자들이 세무 조력을 받을 권리도 침해된다"며 "적어도 본회의에 넘겨 전체 국회의원들이 법안 내용을 심리해 최종 결정할 기회라도 줘야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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