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동통신 시스템상 유심 없이 단말기 개통 안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타인 명의의 유심을 구입해 자신의 휴대전화에 꽂아 사용한 행위도 단말장치 부정이용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유심 개통 없이 단말장치만 개통할 수 없는 현재의 보편적 이동통신 시스템에 따라 단말장치 개통은 유심 개통을 포함하거나 이를 전제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유심(USIM)은 '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Universal Subscriber Identity Module)'의 약자다. 무선통신 회선 가입자들의 신원과 전화번호, 요금제 등의 식별정보를 담고 있는 저장장치로 개념상 단말장치와는 구별된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상습사기 및 전기통신사업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30대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전기통신사업법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2019년 1월 말께 구글 사이트에서 알게된 성명불상자에게 A씨 명의로 개설된 휴대폰 유심칩 1개를 60만원을 주고 구입한 뒤, 이 유심칩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부착해 2달 가까이 사용해 전기통신사업법을 어긴 혐의를 받는다. 또 같은달 14일부터 3월 말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중고나라' 카페에 접속해 유명 가수의 콘서트 입장권 판매대금 명목으로 총 74명으로부터 2300여만원의 송금을 받는 등 상습적으로 재물을 교부받은 혐의도 있다.
앞서 1심은 김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배상을 신청한 3명에 대해 각각 30만원에서 6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김씨)은 출소(2018년 12월 28일)한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중고거래 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저질렀고, 자신 명의로 6개 전화번호를 개통하고, 타인 명의 계좌와 유심칩을 구매해 사기 범행에 사용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등 범행수법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수차례 사기죄와 상습사기로 처벌받았고, 특히 상습사기죄로 2차례 실형 전력이 있음에도 교화되지 않았다"며 "도저히 개전의 정이 없어 상당기간 사회와 격리해 사회의 안전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2심은 김씨가 타인 명의의 유심을 구입해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용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아닌 유심칩만 구입해 이용한 것은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형량은 1심과 같은 징역 2년 6개월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휴대전화 유심칩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규정된 이동통신단말장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법에선 이동통신단말장치를 '전파법에 따라 할당받는 주파수를 사용하는 기간통신역무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단말장치'로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심칩은 그 자체로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처리결과를 출력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중앙에 있는 컴퓨터와 통신만으로 연결돼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처리결과를 출력하는 장치를 뜻하는 단말장치와 구분된다는 취지에서다.
이에따라 원심은 이 부분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실형 2회 등 이미 여러차례 사기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자숙하지 않은 채 출소 20여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하며 "이른바 대포폰, 대포통장을 사용하는 등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한데다 피해자만 114명, 피해액은 3000여만원이 넘었다"며 원심과 같은 형량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 중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인천지방법원에 환송했다. 타인 명의로 단말장치를 개통하는 것뿐 아니라 타인명의의 유심만 구입해 자신의 휴대전화에 꽂아 사용하는 행위도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에서다.
그 근거로 지난 2018년 6월 28일 대법이 선고한 판결을 꼽았다. 당시 대법은 "단말기 부정이용에는 다른 사람 명의로 직접 단말장치를 개통한 후 이를 이용하는 행위뿐 아니라 다른사람 명의로 개통된 단말장치를 넘겨받아 이용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금지하는 단말장치 부정이용은 자금 제공을 조건으로 다른 사람 명의로 전기통신역무의 제공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단말장치를 개통해, 그 장치에 제공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정의했다.
대법원은 "유심을 사용하는 현재 보편적 이동통신 시스템 하에서는 유심 개통 없이 단말장치만도 개통할 수는 없고, 반대로 단말장치의 개통 없이 유심 개통만으로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할 수도 없으므로 적용법조에서 말하는 '단말장치의 개통'은 유심의 개통을 당연히 포함하거나 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씨가 A씨 명의로 개통된 유심을 구입한 뒤 이를 자신이 소지한 공기계 휴대폰에 장착하고 전기통신역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휴대폰을 A씨 명의로 활성화시켜 사용한 혐의는 단말장치 부정이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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