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공범부터 '가토 다쓰야' 재판 개입까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현직 법관들의 1심 재판 결과가 연달아 나온다. 가장 먼저 선고를 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무죄 판결에 이은 것이라 사법농단 재판의 첫번째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재판 중인 전현직 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14명에 이른다.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3일 오전 10시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55·사법연수원 19기)·조의연(54·24기)·성창호(48·25기) 부장판사의 선고 공판을 진행한다. 14일 오전 10시에는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송인권 부장판사) 심리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56·27기) 부장판사의 선고 공판이 열린다.
이들은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당시 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무더기로 기소한 전·현직 법관 10명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54·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지난달 13일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 항고로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두 사건 피고인들의 죄명과 혐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의 재판 결과는 사태의 핵심 인물 양승태(72·2기)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관련 혐의로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성 부장판사와 신 부장판사, 조 부장판사 등 3명은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현직 법관이 연루되자 사법부 조직 보호라는 목적 아래 검찰 수사자료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넘긴 혐의를 받는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 부장판사는 임종헌(61·16기)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같은 법원에서 영장전담 부당판사로 재직하던 두 피고인에게 수사기록 등을 수집해 보고하게 했다.
이들의 혐의는 양 전 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소사실과도 겹칠 뿐 아니라 각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이에 따라 13일 성 부장판사 등의 재판 결과는 양 전 원장과 임 전 차장의 재판과도 연관성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판결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박근혜(68)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청와대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5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판결 내용을 일부 수정·삭제하도록 재판부에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외에도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된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오승환 씨를 정식 재판에 넘기려 한 재판부 판단을 뒤집고 검찰 의견대로 벌금형 약식기소로 사건을 마무리하도록 종용한 혐의가 있다.
핵심 인물들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혐의는 없지만 관련 의혹으로 기소된 대부분 법관들과 마찬가지로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결과는 직권남용 범죄 성립을 가늠할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직권남용죄에 대한 첫 판단을 내리며 해당 판례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81)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54)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4) 등의 상고심 선고에서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들이 직권을 남용한 것과 별개로 지시를 받은 하급자들의 행위가 '의무없는 일'에 해당하는지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로 종전보다 엄격한 법리 해석의 필요성을 판시했다.
검찰은 임 부장판사의 공소장에서 "사법행정권은 법원의 재판권 행사가 적정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 및 지휘 감독을 하는 권한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사법행정권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에 의한 한계가 존재하는데, 특히 재판과 관련된 사법행정권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그 행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적정하고 신속한' 재판권 행사를 위한 지원이었는지, 아니면 법관의 독립성을 헤친 범죄였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공무상비밀누설죄의 경우 각 기관 비밀 엄수 규정에서 벗어난 정보를 유출했다는 사실관계만 인정되면 유죄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며 "성 부장판사 등 3명은 양 전 원장 혐의 중 공무상비밀누설죄 공범으로 적시된 만큼, 이들이 유죄 선고를 받는다면 혐의사실의 사실관계와 법리 해석은 마무리됐다는 걸 의미해 양 전 원장의 선고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직권남용죄의 경우 직무 범위와 남용 기준이 여전히 애매해 재판부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전삼현 교수는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형사수석부당판사로서 정당한 권한 행사로 볼 것인지 여부가 관건인데, 남용 범위를 넓게 보면 공직 사회를 경직시킬 우려가 있어 재판부로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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