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초반 몇차례 번복…사기죄 피소도 장애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고 장자연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았으나 1심 무죄 선고된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 모 씨의 항소심 선고가 7일 예정됐다. 1심에서 신뢰하기 어렵다고 본 '유일한 증인' 윤지오(33·본명 윤애영) 씨의 진술 신빙성이 항소심에서는 인정될지 관심이 모인다.
서울고법 형사항소2부(이관용 부장판사)는 7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조 씨에 대한 2심 선고 공판을 진행한다.
조 씨는 2008년 8월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주점에서 열린 장 씨 소속사 대표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장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2009년 3월 장 씨가 사망한 뒤 경찰은 파티 현장에 있었던 윤 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조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윤 씨의 진술 신빙성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2018년 5월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권고로 시작된 재수사 끝에 조 씨는 같은 해 6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조 씨 사건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조 씨의 추행 사실이 강한 의심은 들지만 이를 목격한 핵심 증인 윤 씨 진술의 신빙성 등을 문제 삼으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가 윤 씨의 진술을 지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윤 씨는 2009년 경찰 조사 당시 장 씨를 추행한 범인으로 "일본어에 능통한 50대 초반 신문사 사장"이라고 지목했다가 홍 모 언론사 회장을 특정했다. 윤 씨는 경찰 5회 진술에 이르러서야 조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수사 초반 범인을 지목하는 과정에서 3차례 말을 바꿔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조 씨는 사건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에 신장 177cm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젊고 키가 컸는데도 연령과 인상착의를 특정하지 못한 점도 의심스럽게 봤다. 결국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법조계는 윤 씨가 2009년 조 씨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 뒤부터 2019년 재수사로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10년간 조 씨만을 범인으로 지목한 점에 주목한다. 같은 달 검찰 항소로 2심 재판이 시작되며 윤 씨의 증언도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항소심 재판은 1심에서 조사된 증거자료를 토대로 추가 심리를 진행하는 만큼 윤 씨의 진술은 2심 선고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쳐진다.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윤 씨는 2009년 조사 당시 처음에는 참석자들의 명함과 윤 씨의 기억을 토대로 범인 후보군을 추렸다. 이 과정에서 윤 씨는 50대 신문사 사장과 모 언론사 대표 홍 씨 등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제5회 경찰 조사에서 조 씨의 영상과 홍 씨의 영상을 번갈아 살펴본 뒤 윤 씨는 조 씨만을 일관되게 범인으로 지목해왔다.
이에 따라 윤 씨의 진술은 번복이 아닌 사건을 수사 중 용의자를 특정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한 윤 씨는 2009년 조사 당시 조 씨가 아닌 50대 신문사 사장, 홍 씨 등을 범인으로 오인한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수사 초기 지목한 범인이 달라지긴 했지만, 영상을 본 뒤 피고인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점이 원심을 뒤집을 주요한 쟁점으로 보인다. 특히 조 씨의 외양만을 담은 영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상을 보여줬는데도 조 씨를 범인으로 특정했다면 더 큰 증명력을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장윤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역시 "주요 증인의 진술이 번복됐다면 공소유지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맞다"면서도 "윤 씨의 진술이 바뀐 내용 중 나이와 직책은 생일파티 현장이었고 초면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든지 혼동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조 씨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 뒤부터 조 씨만을 범인으로 지목해 왔다는 점에서 증명력이 높아 원심이 뒤집힐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2009년 사건 수사를 책임졌던 김 모 총경이 증인석에 서 "윤 씨의 증언 신빙성을 믿었다"는 취지로 증언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15일 김 총경은 윤 씨가 범인 지목 과정에서 말을 바꾼 것을 놓고 "사건 발생 뒤 최소 6개월이 지났고 (윤 씨가) 충격으로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인상착의는 흐릿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저희 경찰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여겼다. 윤 씨 진술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씨가 후원금 모금 의혹으로 사기 혐의로 피소된 사실은 진술 신빙성을 증명하는데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위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등 기망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골자인 사기죄 피의자라는 점에서 재판부의 심증에 영향을 주는게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수사정보를 외부로 유출해 기소된 최 모 춘천지검 검사는 핵심 증인이 사기죄로 기소돼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일부 혐의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춘호 부장판사는 최 검사의 핵심 혐의인 공무상비밀누설에 대해 "핵심 진술을 한 증인이 사기죄로 재판을 받은 사실 등을 비춰볼 때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윤 씨의 진술 신빙성뿐만 아니라 성 접대 강요라는 사안의 특수성을 재판부가 얼마나 이해하는지도 판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은 무죄 선고 이유로 "생일파티에서 성추행이 있었다면 생일파티가 중단됐을 것이고, 동석한 소속사 대표 역시 소속 배우를 추행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이를 말렸을 것이다"라고 판단해 논란이 일었다.
장윤미 변호사는 "1심 재판부는 소속사 대표가 동석한 상황에서 강제추행 범죄가 일어났을리 없다고 단정했다. 소속사 대표라면 자기 회사 배우를 당연히 보호할 거라는 전제에 따른 것인데, 이 사건의 본질은 대표가 자기 배우를 데리고 다니며 접대를 하도록 강요했다는 점"이라며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2심 재판부는 성 접대 강요라는 사건의 특수성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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