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임우재 웃고 임종헌 울고…'바늘구멍' 재판부 기피신청

30일 대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61)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신청한 재판부 기피 신청을 최종 기각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0월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임 전 차장의 모습. /더팩트DB

10년간 재판부 변경 사례 0%대…"피고인 기피권 침해" 지적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임종헌(61)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에 편파적인 재판 진행 등을 사유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으나 7개월 만인 30일 대법원에서 최종기각됐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은 "피고인을 범죄자로 처단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보였던 부장판사와 '불편한 재회'를 하게 됐다.

◆재판 기피 신청 인용은 '법관 연고'에 달려

현행 형사소송법상 재판부가 변경될 수 있는 절차는 △제척 △회피 △기피다. 제척은 법관이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 친족관계에 있거나 법정대리인 자격이 있는 등 법으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할 때 해당 사건 재판 업무에서 빠지는 제도다. 회피는 제척과 달리 법적인 기준은 없지만, 법관 스스로 공정한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 맡은 재판에서 손을 떼는 절차다.

법원과 법관이 주체가 되는 제척·회피와 달리 검사나 피고인 측이 재판 진행에 이의를 제기하며 재판부 변경을 요구하는 제도가 '기피'다. 법관 기피 신청서는 그 법관의 소속 법원에 접수해야 하며, 해당 법원의 다른 재판부가 기피 사유를 심리한다. 일반 재판과 마찬가지로 결과에 불복할 경우 고등법원에 항고할 수 있고, 임 전 차장처럼 재항고해 대법원 판단까지 받을 수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관이 사건 관계인들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등의 상황이 아니라면 '불공정한 재판 진행'을 소명하기 쉽지 않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는 "통상 받아 들여지는 재판부 기피 신청 사유는 재판부가 사건 관계인들과 학연, 지연 등으로 맺어져 공정한 재판 심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될 때"라며 "이런 측면에서 임 전 차장의 주장은 재판부를 바꿔야할 수준의 사유에는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 전 차장은 추가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검사처럼 증인을 추궁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을 기피해 왔다.

임 전 차장처럼 재판 심리과정이 불공정하다며 재판 기피를 신청하는 경우 결과는 대부분 기각이었다. 네이버 댓글 조작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드루킹' 김동원 씨는 2018년 11월15일 1심 재판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성창호 부장판사)가 고 노회찬 의원의 부인에 대한 증인신문 요청을 기각하자 "피고인 방어권을 무시한 편파적 재판"이라며 재판 기피를 신청했다. 일주일 뒤 법원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 씨 측 신청을 기각했다.

비선실세 최서원(최순실·개명 전 이름 최순실) 씨는 2018년 3월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기피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2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최 씨의 모습. /더팩트DB

'국정농단' 사태 핵심 인물로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 절차를 밟고 있던 최서원(64·개명 전 최순실) 씨 역시 2018년 3월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김문석 부장판사)에 대해 "이미 딸의 학사비리 사건을 담당해 불공정 재판이 염려된다"며 재판 기피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주일 뒤 법원은 최 씨의 사건을 서울고법 형사4부(조영철 부장판사)로 재배당했는데, 기존 재판부가 같은 사태에 연루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연고가 있다는 이유였다.

법관 기피 신청서가 접수된 즉시 모든 소송 절차는 중단된다. 이를 계산해 불리한 선고가 예상되는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간주될 때도 기피 신청은 반려된다. 2017년 2월 탄핵심판을 앞둔 박근혜(68) 전 대통령은 강일원(61·사법연수원 14기) 당시 헌법재판관에 대해 기피를 신청했으나 "오직 심판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각하 당했다.

반대로 재판장과 사건 관계인의 연고를 사유로 들었을 때는 신청자의 의사대로 재판부가 변경됐다. 2018년 3월 임우재(52) 전 삼성전기 고문은 이부진(50) 호텔신라 대표이사와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3부(강민구 부장판사)가 삼성그룹과 연고가 있다며 재판 기피 신청을 냈다. 1년 뒤 대법원은 불공정 재판을 의심할 객관적 사정임을 인정해 임 전 고문의 신청을 인용했다.

임우재(52) 전 삼성전기 고문은 이부진(50) 호텔신라 대표이사와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삼성그룹과 연고가 있다는 이유로 재판 기피를 신청했고, 대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2월4일 이혼소송 1심 재판에서 패소한 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항소장을 제출하고 민원실을 나서는 임 전 고문의 모습. /더팩트DB

◆인용 사례 10년간 0%대…'기피권 보장' 목소리도

통계에 따르면 기피 신청 인용은 물론 재판부 변경 사례도 극히 드물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9~2018년 민·형사 재판에서 당사자 또는 판사가 직접 재판부 변경을 신청한 8353개 사건 중 인용된 사례는 11건(0.13%)이었다. 법으로 명시된 피고인의 재판 기피권이 사문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따른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기피 신청을 각하한 뒤 법원이 임의로 재판부를 재배당하는 등 법관의 불공정한 재판을 '인정'하기 꺼려한다는 이유다. 지난해 5월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관 기피 신청이 있는 경우 해당 법관이 대상사건을 미리 회피하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기피·회피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은 비판도 용인하지 않는 사법부의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며 기피 신청에 대한 판단이 확정되지 않을 때까지 법관의 회피를 금하는 민·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제척은 기준이 법제화돼 있고, 회피는 법원이 스스로 변경 필요성을 느껴 판단하는 것이니 피고인이 재판부를 놓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제도적 창구는 오로지 기피 뿐"이라며 "현 기피제도는 피고인이 기피하고자 하는 법관이 소속된 법원이 기피 사유를 판단하다 보니 피고인으로서는 과연 내 사유가 공정하게 심리될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시민위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과 같이 제3의 기관이 함께 검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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