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무법지대 블록체인①] '나몰라라' 시장 방치에 범죄 양산..."법령 제정 시급"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방침에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지난 2018년 1월 17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 중구 다동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앞에 서 있다. /더팩트 DB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들어 '인공지능(AI) 일등 국가'로 도약을 강조하는 등 AI와 빅데이터,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산업이 화두다. 이와 함께 법령 제도화 등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기가 과열됐던 2017년 말 정부는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술 연구개발이 확산되고 관련 시장 성장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관련 법규 정비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피해자들이 늘고있다. 투자자 뿐 아니라 관련 비지니스 종사자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이에 따라 <더팩트>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따른 가상화폐 등에 대한 국내 법률 규제 현황 및 이슈 등을 살펴보고 어떤 대책들이 필요한지 등을 <무법지대 블록체인> 2부로 알아봤다. 1부에서는 암호화폐 및 거래소 규제 동향과 관련 법적 이슈 등을 짚어봤다.<편집자주>

변협 '블록체인 특위' 구성 등 법조계도 관심..."규제 공백 해소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블록체인은 이용자 거래내역 등 데이터를 서로 분산해 저장해 악의적 해킹 등 데이터 조작을 막아주는 기술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뿐 아니라 의료정보 공유와 자금 추적, 투표 등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투명성과 신뢰도가 필수적인 업무 분야에 활용될 수 있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기술로 부각된다. 머지 않아 블록체인 기술이 인공지능(AI)과 결합될 경우 사물 혹은 기기의 자율 실행까지 가능한 시대가 온다. 블록체인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기가 과열됐던 2017년 말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가상통화 취급업자의 기존 가상계좌 서비스를 중단하고 실명확인을 강화하도록 조치했다. 금융위원회 '가상통화 관련 자급세탁 방지 가이드 라인' 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블록체인을 규제할 법적인 근거는 없다. 제도권 내 은행을 통한 간접적 방법으로 규제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블록체인 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발행된 암호화폐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령은 없다. 정부기관의 명확한 입장이나 판례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가상통화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 업체가 늘어나면서 금융감독원 수사의뢰 건수도 급증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유사수신 혐의업체 특징 및 유의사항'에 따르면 금감원이 수사의뢰한 유사수신 혐의 업체는 총 153개다. 이 중 가상통화 공개·채굴·투자 등을 빙자한 유사수신 혐의 업체는 39건으로 2017년 27건에 비해 44.4% 증가했다. 2018년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유사수신 신고·상담 건수도 2017년 보다 38.5% 증가했다. 이 중 가상통화를 빙자한 유사수신 신고·상담 건수는 453건으로 2017년보다 400건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금융당국은 처벌은커녕 조사권한조차 없다.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금융위원회 등 관련 정책 부처들도 암호화폐 제도화 필요성을 절감한다. 특히 오는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금(FATF)의 한국 등 회원국에 대한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AML) 이행점검을 앞둬 FATF 암호화폐 정책 권고를 이행할 수 있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의 처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세원 포착과 자금세탁방지 등 암호화폐 사업 후속 정책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2월 임시국회 소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금법 개정안은 2019년 11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문턱에 걸려 있다. 국회 최종 본회의에서 처리돼야 시행령 등 하위법규 마련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이슈에 특금법 개정 논의가 묻힐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9년 11월 26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권칠승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블록체인·암호화폐 질의응답집 발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대한변협신문

법조계에서도 더이상 암호화폐 시장의 '무법상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11월 IT블록체인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규제 공백으로 많은 혼란을 겪는 건전한 사업자에게 조금이라도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정재욱 변협 IT블록체인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가 암호화폐 거래 등을 놓고 심도 깊은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위원장은 "암호화폐 거래 법적 정비를 방치해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둘째치고 다수 피해자를 양산해 온 것은 아닌지, 혁신적 사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건전한 사업자마저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거나 해외로 내몰았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어디까지 어떻게 허용할지 국회가 심도 깊게 논의해 대책을 내놓을 시점"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을 놓고 벌어지는 출국 금지 및 해킹, 개인정보 유출 등 실제 이용자와 거래소 간 법적 분쟁은 이미 익숙해졌다. 뚜렷한 법적 규제 및 규율이 없다 보니 자본시장법 등 현행법령에 한계가 있는데도 적용되기도 하는 모호한 상황이다.

지난해(2019년) 1월 서울남부지법이 A거래소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사건도 한 예다.

A거래소 대표이사 등 임원진은 2018년 1월 A거래소 내 차명계정을 5개 이상 생성했다. 전산 조작을 통해 암호화폐와 원화 포인트를 허위로 입력하면서 자동 주문 프로그램인 '봇 프로그램'으로 가장 매매를 해 거래량을 부풀렸다. 또 총 60회에 걸쳐 차명계정 10개에 각 100만개 비트코인을 보유한 것처럼 보유량 정보를 조작 입력하고 이를 행사해 일반인에게도 매매했다. 이외에도 고객이 매입한 암호화폐를 실물출고 요청한 경우 다른 거래소에서 해당 암호화폐를 매수한 후 전자지갑에 실제 암호화폐가 있었던 것처럼 가장해 출고했다.

재판부는 포인트 잔고에 해당하는 암호화폐나 원금을 입력하지 않았고, 관련 예금액이 존재한 사실이 없다며 '사전자기록 등 위작'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또 봇 프로그램으로 가장 매매했고, 고객들이 거래에 참여하도록 유도한 '사기' 혐의도 유죄로 봤다.

1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전광판에 1000만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시세가 보이고 있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1000만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두 달만이다./뉴시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7월부터 2년간 암호화폐 범죄 수사 결과 165건을 적발하고 132명을 구속기소, 22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기간 동안 투자 빙자 사기·다단계·유사수신 범죄, 암호화폐거래소 관련 범죄 피해액은 2조6985억원에 이르렀다. 암호화폐 국내 거래량과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관련 범죄도 증가하는 추세다.

정 변호사는 "암호화폐 시장을 방치하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 규제의 공백과 모호함은 한편으로는 제대로 사업을 해보려는 기업의 앞날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관련 범죄의 양산을 방치한다"며 "현황을 파악해 적극 도움을 줘야 한다. 국회에서 변협 등 관계 기관과의 논의 등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거듭 촉구했다.

지난 20일 문을 연 동남권 지역 대학 최초 블록체인 연구기관인 영산대 블록체인연구소 김진환 소장(컴퓨터공학부 교수)은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로 블록체인 업체들의 기술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관련한 법안의 조속한 처리 등이 필요해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가 아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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