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66년 만에 형사사법 대변혁...'수사는 경찰' 변화 물꼬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13일 국회를 통과했다. /박숙현 기자

검경 수사권조정안 통과..,"수사종결권 가져온 경찰, 역량 강화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검찰 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13일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에 따라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66년만에 검찰이 독점한 수사 지휘권이 폐지되는 등 형사사법 절차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날 통과된 수사권 조정안은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비롯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 부여,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 제한 등 검찰 권한을 분산시키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이 고위급을 겨냥했다면, 수사권 조정안은 민생과 밀접한 사건의 수사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 국민의 삶에 직결된다는 취지다.

◆ '수사권 조정법안' 통과...'수사는 경찰' 인식 변화 시작

가장 큰 쟁점은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한 것이다.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수사권의 주체는 검사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 보조자로 규정했다. 60년이 넘도록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 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검·경 관계는 수직적인 '지휘'의 관계에서 동등한 위치의 '협력'으로 바뀐다.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이 부여되면 경찰은 혐의가 인정된 사건만 검사에게 송치하고,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건은 자체 종결할 수 있다. 다만 검찰은 경찰이 불송치한 기록과 관련 증거를 90일간 들여다 본 뒤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검사가 이유 없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고등검찰청에 외부인사로 구성된 영장심의위원회도 신설된다.

다만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제한된다. 향후 검찰은 부패범죄 및 경제범죄, 선거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와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에 한해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또 검찰 조사 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도 제한된다. 그동안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 단계에서 증거 능력을 높게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김남준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은 <더팩트>와 신년인터뷰에서 "검찰이 아닌 다른 기관에 권한을 주거나 나누는 것이 인권보호와 권력분립의 기본 원칙"이라며 "점점 검찰의 수사 영역을 줄여 나가 근본적으로 수사와 기소, 재판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앞으로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검·경수사권조정법안 중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사권을 경찰에게 독립적으로 부여하는 것에 의미가 있고, 검찰이 직접 인지해서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 특징"이라며 법안 통과 의의를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가 안착되면 수사는 경찰이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늘어나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오후 추미애 법무부장관 예방을 마치고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중조사' 행정 낭비 줄고 경찰출신 변호사 늘고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통과가 일반 국민 삶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전문가들은 '이중조사'를 받는 불편이 줄어든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경우 다른 수사 기관에서 조사받을 필요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수사 초기 대응이 중요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 단계에서 변호인 선임이 활성화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경찰 출신 변호사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그동안은 경찰 조사 뒤 검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에 생업에 바쁜 국민들 입장에선 시간과 에너지, 노력 등이 매우 낭비됐다"며 "국민들의 고생과 수고, 시간낭비 등이 줄 것이고, 행정력의 낭비 역시 상당 부분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검찰이 경찰 수사에서 놓친 부분을 밝혀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사실상 민생 범죄 사건에선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검찰의 직접수사를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형사사법 시스템 제도의 비효율과 낭비를 줄일 수 있게 됐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수처 및 수사권 조정 TF팀 김현석 위원장은 "수사 절차가 검찰 중심에서 경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쪽으로 실무변화가 예상된다"며 "이 때문에 경찰 수사에 참여하는 고소인 및 피의자를 대리하는 변호사 참여 비중이 높아지겠으나, 이미 변호사 수가 늘어날 대로 늘어난 만큼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찰 수사단계 인권침해 우려..."수사역량 강화해야"

경찰 수사 단계에서 인권 침해 등 부작용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향후 수사 역량 강화 등 경찰의 노력이 관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현석 위원장은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없다. 진행하면서 실무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등은 국민들의 검찰 개혁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만큼 (경찰 등이)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해 수정,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곽 교수는 "경찰은 수사종결이라는 권한을 얻은 만큼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과학수사를 최대한 활용하는 등 무엇보다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수사의 기본인 현장을 지키는 경찰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곽 교수는 "경찰은 그동안 사건의 진실 파악과 범죄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고생해왔지만 결국엔 검찰의 업적만 드러났다"며 "심지어 국민들은 주인공인 검찰에 비해 엑스트라 역할만 해온 경찰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황정민 씨의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처럼 어쩌면 검찰은 경찰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만 맛있게 먹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0월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수사권 조정안은 법 개정안 공포 후 6개월 뒤부터 1년 내 대통령령으로 시행 시점을 정하도록 하고 있어 올해 안세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검사 피신조서 능력을 폐지한 개정안은 별도 규정을 둬 향후 4년 내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점부터 시행된다.

여야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불참한 가운데 형사소송법 개정안(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과 검찰청법 개정안(유성엽 대안신당 의원 대표 발의)등 2건의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처리했다.

이날 본회의 표결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167명 중 찬성 165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검찰청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166명 중 찬성 164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각각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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