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이탄희 "김명수 대법원, 신뢰가 냉소로 바뀌고 있다"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지난달(12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사법농단' 저항 판사에서 공익변호사로…"사법개혁 더디지만 희망 있다"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지난해(2019년) 1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돼 수사를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결국 구속됐다. 현재 양 전 원장은 보석으로 풀러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법농단'의 진실은 이탄희 판사가 세상에 알렸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기까지 2번의 사표를 냈고, 진실과 거짓의 힘겨운 싸움을 법원 밖이 아닌 내부에서 감내해야 했다. 여느 판사들과 같이 시키는대로 하며 자리를 지켰다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 2심의관에서 1심의관을 거쳐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 대법관까지 승승장구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는 법관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지난달(12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이탄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3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뒤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2월 첫 사표를 낸 뒤 제 삶의 키워드가 '판사로서의 자부심'에서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사법농단 사건을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사실 처음에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힘들었다. 3년 정도 지나니 그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스스로 법원을 떠났지만 그간의 고충이 얼마나 컸는지, 11년간 몸 담았던 법원 조직에 대한 애정, 그리고 판사직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가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2017년으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난 뒤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사표를 던진 자신의 선택을 오히려 칭찬했다. 그때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쉽지 않은 행동이었는지 오히려 지금에서야 느낀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이 여러 면에서 훨씬 노련해졌을 수 있지만 당시엔 정말 진정성이 있었다. 아내가 (사표를 내기보다) '뒷조사 파일'을 가지고 나오라 했지만 절대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고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판사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의 일관성을 깨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게는 '낙제점'을 줬다. 2020년으로 취임한 지 햇수로 4년째지만 사법개혁 성과물이 거의 없다. 이 변호사는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 부재가 국민과 젊은 판사 등 모두를 위한 사법개혁을 판사들만의 잔치로 만들었다. 책임지는 태도도 없고, 과업도 전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만약 사법개혁을 위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최소한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인데 그 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새해에는 사법농단 사태 해결을 향한 책임감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희망을 꿈꾸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고시생과 판사로 살면서 계획적으로 사는 삶은 이미 충분히 살았다"며 "이제는 가볍게 마음을 비우고 상황에 맞춰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과를 얻는데 시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저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이 변호사의 모습을 보니, 지난 1년을 넘어 올해도 지난하게 진행되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의 오버랩됐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2019년은 특별한 해였다. 2년 여 간의 마음고생 끝에 법복을 벗었고, ‘사법농단’ 연루자들의 재판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하겠다. 2017년부터 3년이지났다. 2018년 말까지는 판사였고 사법농단 사태도 진행 중이어서 좀 여유가 없었는데 올해(2019년) 연말이 되니까 '아~이렇게 일들이 흘러갔구나'하고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라. 2017년 2월에 처음 사표를 냈는데 그 전과 그 이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전에는 주로 '판사로서의 자부심'이 제 삶의 키워드였는데, 그 후로는 '책임감'으로 변했다. 사법농단 사건 처리 과정에서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처음에는 그냥 힘들었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그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저도 그동안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해서 판사가 됐고 모범생으로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항상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살아가는 삶, 계획표에 따른 삶에만 익숙했다. 하지만 2017년 이후부터는 계획을 할 수 없는 삶에 놓였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충실하게 살아야 했고 '내일은 또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겠지'하며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계획하는 삶에서 여행같은 삶으로 바뀌었다.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2017년에서 2018년까지는 촛불집회 직후 개혁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그래서 낭만주의적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그 성과가 얼마나 있는지 사람들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당수는 실망하기도 하고, 다시 고삐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법원 개혁도 마찬가지로 2017년, 2018년 당시에는 우리가 세웠던 이상이 너무 높았던 것 같다. 사법농단 사건이 처음에는 젊은 판사들 중심으로 시작이 됐고, 이들이 세웠던 이상은 국민 모두를 위한 사법개혁이었다. 우선 고위 법관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재판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적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재판하게 해주면 국민의 기본 인권과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우리 본분을 다해 국민에게 신뢰받고 법원의 명예를 찾고 싶다는 거다. 2017년부터 2년간 이렇게 끌고 왔다면 2019년은 사법개혁 논의가 조금은 수그러들고, 잊혀지기도 하면서 많은 분들께 이 개혁이 판사들의 잔치로 비춰지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다시 고삐를 단단히 붙잡아 우리 지향이 무엇인지 다시 논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지난달(12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2017년 전의 삶과 이후의 삶 중 어떤 쪽이 자신에게 맞는가.

철학적인 이야기 정말 싫어하는데...(웃음) 니체가 한말 중에 '우리를 죽이지 않는 이상,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짜 공감이 많이 됐다. 처음엔 정말 많이 힘들었다. 저는 좋은 판사가 되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판사를 하다 보니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판사가 되고 싶었고, 판사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싶었다. 그래서 법관의 덕목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판사의 덕목은 사실 어찌보면 심판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의 역할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2017년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제가 한쪽 당사자가 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힘들었다. 말하고 행동할 때 분명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몸이 거부반응을 보였다. 어색하기도 했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날 '책임감'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고 계속 그것을 따라오다 보니 지금이 됐다. 당장은 힘들어도 옳은 선택을 하면 조금씩 덜 힘들어지고 익숙해지더라. 하지만 눈앞의 고통을 피하고 싶어 옳지 않다고 생각한 행동을 선택하면 계속 마음에 남아 '도자기 안의 모래'처럼 나중에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 같다. 운이 좋았다. 당시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받았고 저 스스로도 마음 속의 좋은 목소리를 잘 따라왔다.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이제 조금은 편안해지고 가끔 재미도 느끼게 됐다. 완전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이라면 마음이 힘들더라도 해낼 수 있는 힘은 생겼다. 성격이나 감정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해내는 힘이나 습관이 생겼다.

-‘사법농단’ 사태를 정말 쉽고,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쉽게 설명하기 위해선 비유가 좋을 것 같다. 재판은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은 요식행위고 실제 결정은 밀실, 혹은 대법원장 공관 등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결정을 했다는 것이 '사법농단'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문제다. 법정에서 당사자가 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제출한 증거를 전혀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판결을 내린 거다. 정말 심각한 일이다.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사표말고 다른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 많은 일을 경험하며 혜안이 생겼을 듯도 하다.

제가 사표를 두 번 냈다. 그래서 첫 번째 사표, 두 번째 사표를 냈던 시기로 나눠 생각해 봤다. 먼저 처음 2017년 2월 냈던 사표는 당연히 후회는 없다고 여러번 말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상태보단 당시의 상태로, 그 당시의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이 훨씬 더 노련해졌을 수는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진정성이 있었다.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제 아내가 '뒷조사 파일'을 들고 나오라고 했다. 당시 저는 절대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고 그냥 사표를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때 저는 너무 확신했다. 제가 생각한 것은 딱 한가지였다. 판사로서 살아온 삶의 일관성을 깨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저와 제 명예를 지킨다는 것이 굉장히 컸다. 그런 관점에서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파일을 들고 나왔다면 오히려 제 진정성을 훼손했을 것 같다. 또 공격에서 어떻게 날 방어해야 될지를 고려했다면 뒷조사 파일을 가지고 나오는 것도 생각해 봐야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일주일, 한달은 더 일해봐야 하지 않았겠나 싶다. 대법원장을 찾아가서 대화를 녹음하는 등 끝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밝혀진 모든 일들을 다 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았나. 그래서 그 거대한 일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이 서로 협업하며 사법농단 사건이 드러나지 않도록 막았던 거다. 그런데 만약 제가 그 거대한 협업체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어쩌면 더 머뭇거렸을 수도 있다. 그때의 심정으로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에 사법농단 사태가 지금처럼 흘러올 수 있었다. 더 노련해진, 성숙해진 지금 상태로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2019년 1월 낸 사표도 물론 후회는 없다. 다만 이 사표는 제가 판사로서 소명이 다 소진됐다고 생각해서 냈다. 중간부터 시한부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판사로서 심판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법원 개혁 운동가로 삶을 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재판, 본안 판결을 선고한 것이 2017년 5월이었다. 그 후로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될 때까지 1년 8개월간 판사가 아니었다. 시한부 인생, 죽은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법원 개혁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후회는 없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야 될 일을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와서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제가 그때 그 정도 했으면 나머지 일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도해서 우리가 이상으로 삼았던 사법개혁을 현실에서 잘 구현시킬 줄 알았다. 사직서를 냈을 때 김 대법원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대법원장도 다짐을 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다짐이 별로 이행이 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제가 좀 안일했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쉽게 믿었던 것 아닌가, 그냥 잘 될 줄로만 알았다. 아쉽고 솔직히 화도 많이 난다.

-2020년 임기 4년째를 맞는 김명수 대법원장을 평가한다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처음엔 국민들과 젊은 판사 등 모두를 위한 개혁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판사들만의 잔치가 되버렸다. 그렇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법원장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대법원장은 책임을 지는 자리다. 그런데 책임지는 태도도 없고 과업도 없다. 무슨 속 사정이 있는지와 관계없이 반드시 비판을 받아야 될 것이다.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김명수 대법원장 본인이 판단하기에 지금은 개혁을 할 때가 아닌 멈춰 있어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면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한다. 그것이 리더의 역할인데 그런 것 조차 없다. 신뢰가 냉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사법개혁에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일은.

대법원장이 나서지 않으면 국회가 해야한다. 사법 선진국들을 보면 사법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 국회다. 국민이 주권자인 국가에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건 1차적으로 국회다. 국회가 가진 권한으로 실제 2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첫째가 법관 탄핵, 두 번째가 법원행정처 폐지 및 (저는 이 용어를 좋아하는데) 개방형 사법위원회 설치다. 이 두가지를 해야 하는데 현재 국회에선 어려우니 4월 총선 이후 다음 국회에서 꼭 했으면 좋겠다.(웃음) 여기에서 개방형이란 판사가 다수가 아닌 사법위원회를 뜻한다. 판사들이 하나의 단일 블록에서 과반수가 넘어버리면 아무리 외부 위원들이 참여를 해도 판사들의 집단적 이익 이상의 결론을 내기 어렵다.

-법관 탄핵은 반대도 만만치 않다.

법관 탄핵 이야기가 나오면 걱정부터 한다. 보통 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 한다. 탄핵이라는 단어가 너무 정치적으로 들린다는 것과 탄핵 대상자와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는 것이다. 둘다 답이 있다. 첫번째 탄핵이 정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탄핵제도는 국회에서 소추만 할 뿐이지, 탄핵 결정은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으로 하는 구조다. 그래서 만약 소추가 잘못되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 두번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탄핵할 것인지 문제다. 이 부분이 걱정된다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람부터 시작하면 된다. 사법농단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면 다른 사건부터 결정하는 것도 상관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최근 언론에서 아내를 내쫓고 불륜 관계 여성과 같이 살며, 사건 당사자들과 11차례 골프를 치는 비위 법관이 보도됐다. 이런 법관 탄핵부터 먼저해도 상관없다. 헌법재판소에서 누군가 한명을 탄핵하기 위해 결정을 내리면 기준을 설치하게 된다. 그러면 판결의 기준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 다른 판사들을 심사할 수 있다. 그 기준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헌재에서 설치한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현재 사법농단 관련 비위사실을 통보한 66명 중 10명(판사)만 탄핵된다고 하자. 나머지 56명은 헌재가 잘못은 있지만 탄핵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럼 우리도 어느정도 납득하고 이 사건이 어느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지난달(12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원론적이지만 좋은 재판이란 무엇일까. 매번 옳은 판단을 한다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다.

판사를 하면서 가졌던 기준은 투명한 재판이다. 투명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재판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결론에 이르렀는지 투명하게 드러나는 재판이 좋은 재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재판을 녹음이나 녹화하게 해줘야 한다. 또 재판기일을 열 때에도 연달아 열어 지난 재판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 등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판사 역시 재판을 진행할 때 '나중에 생각해봐야지' 하고 미루는 것이 아니라 의문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에게 질문을 통해서 표현하고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판결 선고 시에도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최대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 또 판결 선고 뒤에는 당사자나 국민이 비평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모든 과정이 투명한 재판이 좋은 재판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재판은 갈 길이 멀다. 녹음, 녹화도 못하게 하고, 재판도 거의 2~3주에 한 번 열린다. 판결 선고 때도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써놨으니 보면 된다고 하고...

-지난 한 해 ‘검찰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도 컸다. 9월부터는 2차 법무·검찰개혁위 위원으로 활동도 시작했는데.

직접 해보니 느낀 것이 있다. 조금 극적으로 표현하면 검찰조직은 전시동원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검사들은 본인을 군인이라 생각하고 검찰총장은 자신을 장군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검찰총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전투가 있으면, 그 전투에 필요한 수만큼 아무데서나 검사들을 차출해 투입한다.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치러야 될 지를 검찰총장이 최종 결정하고, 검사들은 그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세상 어디에도 검찰이 이렇게 운영되는 나라는 없다. 검사는 법률가이기 때문에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 합격 같은 높은 자격을 요구한다. 검사는 독립관청으로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검찰 조직도 수평적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로 운영되는 구조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 이야기는 아닌데, 개인적으로 법원개혁과 검찰개혁 두가지를 모두 거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법조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공직사회 전체의 공통적 문제점이다. 우리 공직자들은 직업적 정체성이 너무 약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직무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이 너무 약하다. 그래서 본인을 소개할 때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나는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라거나 '검찰의 누구입니다. 어디에서 일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한 직업적 정체성이 약하다 보니 그 빈 공간을 조직 구성원으로서 얻는 소속감으로 채운다. 그래서 위에서 조직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 원래 자기가 해야 될 직무와 무관하게 무조건 하게 된다. 그런데 판사, 검사는 특히나 다른 공무원보다 외롭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해야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문제점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특히 이 피해가 국민들에게 직결되다 보니 더욱 문제가 된다. 법원, 검찰을 넘어 결국 우리나라 공직사회 전체를 바꿔나가야 한다.

-법원을 떠나 공익 변호사 생활을 시작을 한 지도 어느덧 7개월이 지났다.

많이 다르다. 판사는 2가지 특징이 있다. 위에서 모든 사람을 내려다 보는 것과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공감에서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선 위에서 내려왔다. (웃음)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눈을 맞추고 있다. 다음은 같이 생사를 겪고 느끼는 점이다. 그러니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만족한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

-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 새해 각오도 말해달라.

세상이 어떨 것 같다고 예측하거나 비평하는 일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전망도 제 경험상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할 것이냐가 핵심이 아닐까 싶다. 저는 2020년을 맞이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첫번째는 판사라는 정체성, 판사로서의 명예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것. 이미 다 과거 일이다. 두 번째로는 그런 상태에서 (사법개혁을 향한)책임감을 외면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세상이 더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스스로 하겠다는 마음 없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예측하다 보면 반대 요인만 눈에 보인다거나,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와 다시 냉소적으로 변하게 되더라.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니 오히려 자신을 보며 희망을 갖게 되고, 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희망적으로 보이더라. 2020년은 세상을 이렇게 더 희망의 시선으로 보고싶다. 새해 각오는 가볍게 마음을 비우고 상황에 맞춰 필요한 일을 하자는 것이다. 제가 이번에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간 것도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 것처럼 좀 가볍게 지내는 게 좋지 않겠나. 미리 세운 계획에 맞춰 사는 방식은 이제 좀 억지스럽다. 고시생일 때나 판사일 때는 그렇게 살았지만 말이다. 다만 책은 쓰고 싶다. 항상 말로만 하고 나면 남지 않고 흩어지는 감이 있다. 국민은 이미 사법농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혁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희망은 반드시 있다. 그것을 위해 저 역시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지난달(12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탄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프로필

△제44회 사법시험 합격(2002) △사법연수원 수료(제34기)(2005) △수원지방법원 판사(2008~2010)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2010~2012) △광주지방법원 판사(2012~2014) △제주지방법원 판사(2015~2016)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2016~2019) △헌법재판소 파견(2018.02)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2019.05~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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