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뒤 작성한 조서 증거능력 불인정…"기소 후 모든 조서는 아냐"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재판 시작 이후 검사가 참고인을 불러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조서를 만들었다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관련 내용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언급된 적 있다. 지난 9월 6일 첫 기소 이후 작성된 검찰의 진술 조서 등이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3부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부탁해 사업 인허가 문제에 도움을 주겠다며 5억 5000만원을 받은(알선수재) A씨의 혐의 중 4억원만 유죄를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최 전 위원장과 중·고교 후배로 알고 지내던 A씨는 2004년께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복합개발사업 '파이시티' 전 대표 이 모 씨에게 '최시중 등을 통해 파이시티 사업 인허가를 받도록 도와주겠다'며 접근했다. 당시 서울시 소관인 '파이시티 사업'은 건축 인허가가 지연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전 대표는 최 전 위원장에게 직접 수 차례에 걸쳐 현금 또는 계좌 이체 형태로 돈을 보냈고, A씨 계좌로 돈을 보낸 적도 있었다. 검찰은 이 중 5억 5000만원을 A씨가 챙겼다고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를 단순 전달자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가 2007년 12월 대선 이후 챙긴 4억원은 최 전 위원장과 무관하게 독자적 로비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보고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 첫 재판을 하루 앞둔 2012년 12월 13일 이 전 대표를 참고인으로 불러 제5회 검찰 진술조서'를 받았다. 이 전 대표는 항소심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와 검찰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의 법정 진술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제5회 검찰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법정증언은 증거법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재판에서 증인신문이 예정된 사람을 검찰이 일방적으로 불러 조사해 작성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대법원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검사가 항소한 뒤, 항소심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검찰에 불러 작성한 진술조서(피고인에 불리한 내용)는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 "이 참고인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로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증언한 경우 그 신빙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전 대표의 법정 진술은 이전까지의 검찰 진술조서(제5회 검찰 진술조서 제외), 피고인 A씨의 검찰 진술과 모순된다"며 "이 전 대표가 검찰의 영향을 받아 진술을 바꿨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재판이 정 교수 공판에서 첫 기소 이후 검찰 진술 조서들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로까지 확대 해석되자 대법원 관계자는 "이 재판은 '1심 무죄판결 이후 항소심 증언 예정자에 대한 참고인 진술조서'에 관한 것으로, '기소 이후 참고인 진술조서' 전부에 관한 것은 아니다"라며 판결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지 대법원 판시는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지난달(11월) 26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정 교수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 제기 이후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증거와 피의자 신문조서는 원칙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재판부는 "이 사건은 특이하게 공소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압수수색도 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며 피의자 신문 등의 수사가 이뤄졌다"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소제기 후 압수수색에서 드러난 것이 이 사건(표창장 위조)의 증거로 사용되면 적절하지 않을 것 같고 피의자 신문조서도 원칙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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