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송병기는 제2의 안종범?…'판도라의 상자' 업무수첩

서울중앙지검직원들이 6일 오후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실을 압수수색하고 압수물품을 들고 시청 로비로 나오고 있다. /뉴시스

'울산시장 선거 의혹' 유력 단서…증거능력 인정될지 관심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2차례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 등 사건 관계인도 줄줄이 불려갔다. 급물살을 타는 검찰 수사에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는 지난 6일 송 부시장 집무실과 자택 등지를 압수수색해 송철호 울산시장의 선거캠프 활동 당시 캠프 내 회의내용과 일정 등이 적힌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을 확보했다. A5용지 크기인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는 이번 사건은 단서가 될 수 있는 상당한 분량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송 부시장은 주변에서 기록전문가로 불렸다고 한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 시장 선거캠프의 움직임 모두를 꼼꼼히 기록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수첩이 대형 사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당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역시 진실 규명에 도움을 줬다. 안 전 수석은 이 수첩들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받은 지시 뿐 아니라 외부 인사들의 면담 내용 등을 기록했다. 2년간 63권에 나눠 기록했고, 검찰에 제출한 수첩만 56권이었다.

고인이 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여기에는 김 전 수석이 청와대에 근무한 2014~2015년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이 날짜별로 빠짐없이 담겼다. 김 전 수석은 2015년 정윤회 문건 사태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의 갈등을 겪어 청와대를 나왔고 이듬해 간암으로 별세했다. 이 비망록은 김 전 수석 노모의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겠다"는 결단으로 언론에 공개됐고,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를 밝히는게 큰 역할을 했다.

사법농단 수사의 스모킹건은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이었다. 검찰은 2018년 8월 이 부장판사의 법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업무수첩 3권을 확보했다.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근무하던 이 부장판사는 해당 수첩에 2015년~2017년까지 3년간의 전국 법원 인사와 법원행정처 수뇌부의 논의 내용을 적었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대(大)’자로 표시해 둔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았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올해 1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이 부장판사 수첩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추후에 ‘대(大)’자를 써 넣었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사법농단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재난 16일 오전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김세정 기자

수첩의 증거능력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안종범 수첩'은 대법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받아쓴 대목은 간접 정황 증거로 인정됐으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적은 내용은 불인정됐다. 또 검찰은 수첩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확인 절차를 거쳐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또 다른 증거를 찾아낸다. 이 과정이 성공리에 마무리돼야 '업무수첩'이 재판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15일과 16일 이틀간 검찰에 출석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 전부터 청와대가 송 시장측과 교감을 하며 회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송 부시장이 2017년 가을께 작성한 업무수첩에 'BH회의'라는 문구가 기재된 부분도 확인했고, 검찰 조사 중 청와대에서 경찰로 직인없이 내려보낸 문서 등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기획재정부·KDI 압수수색, 송병기 부시장 조사에 이어 조만간 송철호 시장도 직접 조사할 방침이다. 이 수첩은 앞으로 열릴 공판에서도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있을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송병기 부시장 수첩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공판에 넘겨지면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추후 조작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겠으나 오랜기간 꾸준히 메모했기 때문에 증거 인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happy@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