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윤중천이 살린 김학의…검찰, 반전카드 있나

법원이 22일 성 접대와 금품 등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김 전 차관이 지난 5월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진술 번복' 뒤엎고 '대가성' 입증해야 가능성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이 성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26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제 식구 감싸기'로 부실 수사를 했다는 오명을 씻으려는 검찰은 항소심에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회심의 카드 '제3자 뇌물죄' 꺼냈지만

김 전 차관의 혐의 중 검찰이 가장 공들인 건 건설업자 윤 씨에게 받은 뇌물이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2006년 9월~2008년 2월 13차례에 걸쳐 성 접대와 3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금액을 산정할 수 없는 뇌물인 성 접대를 추가해도 1억 원 이하의 뇌물죄에 적용되는 공소시효 10년이 완성돼 처벌할 수 없었다.

검찰은 수사단계에서 김 전 차관이 자신의 성 접대 사실을 숨기려고 성 접대 여성 A씨의 채무 1억 원을 변제한 일을 제3자뇌물수수로 보고 포괄일죄를 구성했다. 이러면 뇌물액이 1억 원을 넘어가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돼 성 접대는 물론 윤 씨에게 받은 향응 전부를 처벌할 수 있었다. 반대로 제3자뇌물수수 범죄가 성립되지 않으면 공소권을 전부 상실하는 실정이었다. 1억 원의 채무 변제액은 성 접대 공소시효 완성을 막을 검찰의 유일한 '바리케이드'였던 셈이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12년의 중형을 선고했으나 재판부는 모든 공소사실을 무죄·면소로 판단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자료사진. /남용희 기자

◆윤중천 진술 번복에 무너진 '검찰 바리케이드'

핵심 증인이었던 윤 씨는 1억 원 채무 변제를 놓고 진술을 번복했다. 제7차 검찰 조사에서 윤 씨는 A씨에게 "1억 원 안 받고 한 번 용서해주겠다. 학의 형 아니었으면 넌 죽었다"고 말한 사실을 진술했지만 법정에서는 1억 원 채무는 A씨와의 갈등에서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제3자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근거였던 수사기관 진술은 신빙성을 잃었고 결국 검찰의 바리케이드는 무너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다른 진술이 나오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검찰 수사와 달리 법정에서는 재판부와 변호인, 검찰이 다각도로 신문해 객관적인 증언이 확보되기도 한다. 한국 사법부 역시 법정에서 다룬 증거와 진술을 우선순위에 두는 공판중심주의를 택하고 있다.

검찰은 2심에서도 윤 씨를 증인으로 불러 혐의를 뒷받침할 진술을 얻어내려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증인을 다시 증인석에 세우기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검찰은 1억 원의 채무 변제액을 증명할 또 다른 증인의 진술이나 객관적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 제93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진술을 번복한 당사자를 다시 부르는 게 가장 정확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증인신문이 진행된 증인을 한 번 더 부르는 것은 재판부에서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올바른 재판 진행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며 "결국 검찰로서는 공소를 제기했을 당시 근거로 삼았던 윤 씨의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윤 씨가 진술을 번복한 정황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초동의 A 변호사는 "한국 사법부가 법정 진술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실이지만 같은 진술이라도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유리한지 등을 감안해 신빙성과 설득력을 판단한다"며 "1심 무죄를 관통하는 핵심 사안이 윤 씨의 진술 번복으로 인한 제3자뇌물죄 무죄인 만큼 항소심에서는 진술 번복과정에 대한 자세한 심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과거사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약 2주가 남은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세정 기자

◆'대가성' 굴레에 갇힌 검찰과 사법부

김 전 차관은 2000~2011년 사업가 최 모 씨에게 516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차명 휴대전화 사용대금 약 174만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최 씨의 진술 번복으로 대가성 입증이 어렵다고 판단해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2000~2009년 전 저축은행 회장 김 모 씨에게 1억 5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차명계좌로 받은 혐의 역시 약 5600만원은 입금 경위와 목적, 대가성 등이 소명되지 않아 무죄로 판단됐다. 뇌물액이 1억 이하로 떨어지며 나머지 약 9600만원은 면소로 판단했다.

공소시효가 남은 혐의내용은 대가성 입증이라는 벽에 부딪힌 상태다. 검찰이 나머지 혐의도 대가성을 입증할 '물증'을 2심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A 변호사는 "검찰이 가진 또 하나의 과제는 바로 대가성을 입증할 객관적 물증"이라며 "다만 전 저축은행 회장의 경우 이미 고인이 된 상황이라 수수자가 둘러대기 나름인 면이 없지 않다. 대가성을 증명할 서류나 메모, 제3자의 신빙성 있는 증언을 확보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6일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해 2심 판단을 남겨뒀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6년간 염원했던 사회 각계가 들썩인다. 검사가 장기간에 걸쳐 성 접대와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인정됐는데도 처벌할 수 없는 법리가 야속하다는 불만도 나오는 실정이다. 김 전 차관의 2심을 맡은 재판부의 책임은 법리에 따른 올바른 판단과 함께 사회적 의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조인은 "공직자 뇌물 범죄는 장기간에 걸쳐 발생해 공여와 대가성의 인과관계가 모호하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이 나왔는데 김 전 차관의 혐의는 김영란법 제정 전이라 사법부에 책임을 넘기기 쉽지 않다"면서도 "법을 제정할 정도로 공직자 뇌물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건 안타까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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