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신광렬·성창호 판사 등 7차 공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153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받은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수사보고서 형태 역시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4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의 수사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성창호(47) 부장판사 등 3명의 공판에 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실 심의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운호 게이트'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넘긴 153쪽에 달하는 수사보고서를 검토한 그는 "백쪽이 넘는 수사보고서를 건네받은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25일 오전 10시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된 성 부장판사와 신광렬(54) 부장판사, 조의연(53) 부장판사의 7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2016년 2월~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서 모(39) 전 윤리감사실 심의관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서 전 심의관은 억대 금품을 받아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김수천(60) 당시 인천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검토해 요약한 인물이다. 서 전 심의관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10시20분께부터 오후 4시를 넘겨서까지 진행된 증인신문 내내 "이메일에 드러난 내용상 제가 수사보고서를 검토, 요약한 건 맞지만 구체적인 경위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했다. 반대신문에서도 "기억이 안 난다"고 반복하자 변호인은 이를 혼잣말처럼 따라하며 한숨을 쉬었다.
서 전 심의관은 대부분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윤리감사실 업무에는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윤리감사실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비리 법관을 감시하느냐는 검찰 측 신문에서 서 전 심의관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의혹이 제기된 내용을 파악하고 조사를 통해 징계 조치를 내린다"고 답했다. 조사과정에서 백여 쪽 수사보고서를 받는 일이 있냐는 질문에는 "이례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당시 기억은 없지만 검찰 조사에서 질문을 받으며 영장 청구 사실이 수사보고서 형태로 전달됐다는 점도 특이하다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서 전 심의관은 이례적이라고 느꼈지만 법원행정처에서 김 전 부장판사 수사기록을 확보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2015년 1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작성한 '최민호 판사 사건대응 최종 보고서' 마지막 장에는 "최종적 교훈 및 노하우, 면밀한 수사 상황 점검 및 수사상황 발생 시 기획조정실과 윤리감사실에서 신속한 대응 전략 수립"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최민호(47)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사채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법관이었다. 나름의 '교훈 및 노하우'를 얻은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의 비리 의혹이 터지자 그대로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신 부장판사가 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 검찰의 영장 청구를 심리하는 성창호, 조의연 부장판사에게 10차례에 걸쳐 받은 수사기밀에는 김 전 부장판사가 딸 명의로 18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계좌추적 결과가 명시됐다. 김 전 부장판사는 2016년 8월 10일 해당 내용이 담긴 수사보고서를 전달받은 윤리감사실을 방문했다. 의혹의 중심에 선 법관이 윤리감사실에서 대면조사를 받는 건 서 전 심의관에 따르면 정당한 절차다. 그러나 감사실을 나온 김 전 부장판사는 당일 뇌물공여자 이 모 씨를 찾아가 1800만원 입금 사실에 대한 허위진술을 요청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파기환송심에서도 징역5년에 벌금 2000만원, 추징금 1억2600만원이 확정됐다. 검찰은 성 부장판사 등이 김 전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고 증거인멸 기회까지 제공했다고 본다.
피고인 측은 법원에서 대법원에 법관 비리를 보고한 일은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였다고 주장한다. 재판부에 따르면 성 부장판사 등의 공판은 내년 2월 무렵까지 변론을 종결할 전망이다. 정상적인 권리 행사였는지 역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추후 재판은 12월 2일 오전 10시로, 2015~2017년 사법정책심의관으로 근무한 최누림 대구지법 포항지원 판사의 증인신문이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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